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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웃음가스 유감

2019-11-18기사 편집 2019-11-18 07: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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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조정미 대전대 교수
영국의 화학자 데비(Sir Humphry Davy, 1778-1829)는 전류의 화학작용을 발견한 과학자이며 이 업적은 제자 패러데이에게 연결돼 전기에너지의 시대를 열게 한 장본인이다. 그는 때때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실험을 진행했다. 1800년 독성이 있을 것으로 예측한 아산화질소(N2O) 기체를 직접 들여 마셔본 결과, 이상한 마취작용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에 대한 논문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이것에 웃음가스(笑氣, Laughing Gas)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가스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얼굴 근육에 경련이 나서 결국 실실 웃는 것처럼 된다. 그는 이 기체가 감각을 무디게 하는 효능이 있어서 외과 수술시에 마취제로 쓰이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반세기 가까이 지나면서도 이 가스가 의약용으로 사용되지는 않았고, 대신 웃음 효과를 놀이에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젊은이들은 파티에서 웃음가스를 마시고 소동을 벌였고, 점잖은 영국 신사들도 미친 듯이 웃어대며 난장판을 벌이는 모임을 여는 것이 당대의 유행이었다고 한다. 이후 미국의 어느 치과의사가 웃음가스의 통증 차단 효과를 치아를 뽑는 데 사용해봤다. 자신의 병원으로 다른 치과의를 불러 웃음가스를 들이마신 후 사랑니를 뽑게 했다. 그러자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이것은 의학에서 놀라운 응용을 이끌어 냈다.

서양의학이 한의학에 비해 장점이 있다면 직접 인체를 열고 수술할 수 있다는 점인데, 이때 마취제가 없다면 당연히 수술은 불가능하다. 당시에는 마취없이 수술했으므로 환자는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쇼크사하거나 감염으로 죽어갔다. 마취제의 등장은 외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1870년 미국 치과협회는 웰스라는 이 치과의를 최초의 마취제 발견자로 공식 선언했다.

그런데 이 웃음가스인 아산화질소가 21세기 우리나라에서 식품첨가물로 버젓이 팔리고 있다. 웃음가스는 의약용 마취 보조제이지만, 사실은 엄연한 환각물질인 마약이다. 그런데 이 기체가 제과 제빵용 생크림을 부풀릴 때 쓰는 휘핑가스의 용도로 허가받아 팔리고 있다. 주로 인터넷상에서 팔리는데 이래서야 구매자가 미성년인지, 어느 용도로 쓰는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이것을 고무풍선에 불어 넣으면, 여느 풍선과 달라 보이지도 않으므로 클럽 등에서 고객에게 해피벌룬(마약풍선)이라 불리며 제공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뉴스에 의하면 집에서 휘핑가스를 구입해 해피벌룬을 만들어 마시고 소란을 피우다 이웃의 신고로 처벌받은 사례도 여러 건이 있다. 웃음가스는 정부가 이미 2017년 환각물질로 규정해서 흡입을 금지한 물질이다. 법령에 의하면 아산화질소를 흡입하기 위해 소지하거나 실제 흡입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되어있다. 즉, 본인이 모르고 해피벌룬을 들고만 있어도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한번 마약에 손을 대면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과 사회 전체에 상상도 못 할 해약을 끼친다. 해피벌룬에서 시작한 마약에 대한 호기심은 대마초, 모르핀과 헤로인으로 거침없이 진행되기 마련이다. 구한말 아편에 빠진 사람들이 결국 재산을 탕진하고, 딸과 아내를 팔아먹고, 생지옥에 빠져 생을 마감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마약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만 해본 사람은 없다' 고 한다. 이제 한국은 마약 안전국이 아니다. 더이상 번지기 전에 보건당국에서 손을 써야 할 일이다.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합성 화학물질이 검증에 앞서서 시중에 풀릴 가망성이 있다. 가습기 소독제 피해 같은 어이없는 일이 또 일어날 수도 있다. 일반시민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낯선 약이나 화학물질을 먹거나 사용할 때는 허가된 성분인지 확실하게 알아보는 것이 피해당하지 않기 위해 일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조정미 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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