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티즌이 창단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시민구단인 시티즌이 기업에 매각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구단주인 대전시장이 공식적으로 매각 의사를 밝히면서 구체화되는 양상이다. 올 연말까지 협상을 마무리하고 구단을 기업에 넘기면 13년 시민구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내년부턴 시티즌이 새로운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게 될 전망이다.

그동안 시민구단을 바라보는 시각은 곱지 않았다. 이 용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순수한 시민구단이라면 연고지의 시민에게 공개 주식매매 등의 수단으로 자금을 모아 창설한 구단을 말하지만 그렇지가 못하다. 다수의 시민 의사로 창단되기보다는 소수 시민과 정치인이 결합해서 만든 지자체 구단이라고 보면 된다. 국내 프로축구 1·2부를 통틀어 22개 구단이 운영 중이지만 이런 시민구단이 12곳에나 달한다. 이들 구단들은 2002년 월드컵 당시 전국 10곳에 월드컵 경기장을 지었지만 기업구단이 아닌 지자체가 주축이 된 시민구단 형식으로 창단된 게 특징이다.

시티즌도 1997년 기업구단으로 창단됐지만 월드컵 후인 2006년 시민구단으로 전환됐다. K리그 시민구단 대부분이 만성 적자에 허덕이기 일쑤고 지자체장의 논공행상의 자리로 논란이 끊이질 않는 등 폐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K리그 희망이라던 시민구단이 절망의 아이콘으로 전락한 것이다. 시티즌도 다를 바 없었다. 기업구단만 존재했던 한국 프로축구계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았지만 구단주의 자기 사람 심기, 선수 선발 개입 등 고질병을 앓아 왔다.

창단 이후 22년 동안 대표가 19번 교체된 것만 봐도 그렇고, 매년 80여 억 원이 투입되고도 자생력을 갖추지 못해 눈엣가시로 전락했다. 경기력도 떨어져 5년째 2부 리그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도 눈에 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선수 선발 과정에서 부정 의혹이 제기돼 감독이 사퇴하는 등 위기를 겪기도 했다. 자연히 구단의 정상화 목소리가 높게 일었다. 인기와 성적을 회복하지 못하자 팬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구단이 매각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일부에선 시민구단 전환을 달가워하지 않은 분위기도 감지된다. 스포츠 리그 활성화를 위해선 팀 운영이 모기업 홍보 위주가 아니라 팀 마케팅 위주로 이뤄지는 클럽 시스템(시민구단)으로 기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업 오너에 따라 구단 운명이 좌우되는 걸 벗어나고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연고 의식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스페인 FC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CF 등 해외 명문 클럽이 협동조합 형태의 시민구단으로 운영되는 건 좋은 본보기다.

시티즌이 13년 만에 기업구단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지역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낳고 있다. 당장 매각이냐 투자유치냐를 놓고 말들이 많다. 시는 가치를 매겨 파는 것이 아니어서 매각이 아니라고 일축하고 있지만 실제 매각이나 다름없다는 게 체육계 안팎의 시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선수 선발과 연봉 책정 등 구단 운영의 전권을 기업에 주고 전용구장과 숙소를 제공하기로 한 건 매각 수준의 협상이라는 것이다. 기업구단으로 가더라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수두룩하다. 기존 팀을 인수할 경우 수십억 원의 가입비와 축구 발전기금을 새로 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시티즌은 한때 구름관중을 몰고 다니며 호황을 누렸던 적이 있다.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축구특별시라는 별명을 선사하기도 했다. 시티즌이 기업구단으로 거듭나 옛 명성을 되찾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시가 주장하는 것처럼 투자를 통해 선수들의 기량을 높이고 현 수준 유지보다는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하는 바이다. 팬과 시민들의 축복 속에서 기업구단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