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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끔찍한 미래

2019-10-14기사 편집 2019-10-14 08: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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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박수연 충남대 교수
부당한 사회적 행태에 대해 젊은이들이 맞서서 저항하는 행위가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지지 못할 때, 그 사회는 분노사회가 되고 만다. 한 기사를 보니 한국사회는 지금 울분사회라고 불릴 만한 단계에 진입했다고 한다. 사회에 대해 무언가 불공정하거나 부도덕하고, 그래서 나의 삶이 억울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셈이다. 그 울분에 연결된 감정표현으로서, 인터넷의 댓글 문화라는 것도 유사한 원인이 작동해 특정의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끔찍하거나 눈살이 찌푸려지는 글들도 있어서, 이런 글을 평생 인터넷 공간에 남겨둔 사람은 자신의 댓글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지곤 한다.

필자는 작문교육의 방법에 대해 강의를 할 때마다 수강생들에게 이야기한다. "내가 남겨 놓은 욕설 수준의 댓글이 인터넷에 기록되고, 그 배설물과도 같은 단어들이 평생 자신의 신원과 결합돼 계속 남아 있는 상태를 생각해보자. 나에게서 한순간도 쉬지 않고 잠들지도 않고 상대를 향해 날아가는 칼날 같은 언어들 말이다. 그게 욕설이라면 더 끔찍하겠고… ".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성찰하는 눈치인데,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터이다. 그런데도 저 끔찍한 공격의 언어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마음의 응어리 같은 분노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아서 그러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해결되지 않는 분노가 가장 끔찍한 것은 공격이 개인에게 집중될 때다. 부조리한 사태의 대표자인 개인을 징벌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징적 행동으로 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원인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나아가 그 원인을 중심 의제로 올려놓고 대안을 모색하는 노력 없이 오직 개인만을 공격하는 태도는 절대로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불공정한 현실을 개선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겪은 사태에 대해 분풀이식 공격을 해대는 것일 뿐이다. 그 주요 수단이 법인데, 법치주의는 사회적 삶의 기준을 잡아나가는 중요한 이념이지만, 그것은 방편으로서의 이념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의 법가(法家)가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인정받지 못하곤 하는 이유다. 거기에는 결과에 대한 책임의 윤리는 있어도 원인에 대한 근본적 처방은 없다. 분노의 댓글도 마찬가지고,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개인 중심의 모든 징벌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결코 분노를 잠재우지 못한다. 계속 또 다른 분노의 대상을 찾아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을 뿐이다.

이른바 일류대 학생들이 요즘 모 장관의 자녀 대입 부정혐의 때문에 시끄럽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개인에 대한 징벌 요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요구는 실제 학생의 능력과는 거의 무관한 시험성적만을 강조한다. 부정입학과도 같은 무리한 일이 일어났다면, 그리고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합리적 책임의식 같은 것이 있다면, 원인을 규명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주장에는 원인으로서의 학교 간 차별을 해체하고 금지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는 거의 들어있지 않다. 왜 우리들의 리그에 엉뚱한 사람이 들어왔느냐는 수준의 이기적 요구만이 난무할 뿐이다. 이것이 현실을 이해하는 학생들의 수준이라면, 그리고 그 인식의 당사자들이 부유한 부모를 둔 이른바 일류대 학생들의 수준이라면 우리의 미래는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기적 요구는 마침내는 더 큰 분노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부쩍 드는 요즘이다. 한국은 더 큰 분노 사회로 나아가는 중인가. 박수연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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