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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복지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2019-10-03기사 편집 2019-10-03 07: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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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박순우 공주대 교수
복지국가는 국민의 생활 중 어느 부분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이 질문의 답을 1942년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Beveridge Report)에서 찾을 수 있다. 복지국가의 청사진으로 불리는 이 보고서는 결핍, 질병, 무지, 불결, 나태라는 당시 영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득보장, 의료보장, 무상교육 등 국가정책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국민의 복지를 위한 정부개입 범주를 소득, 의료, 교육, 주택이라는 4개의 영역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 볼 때 우리나라는 복지국가인가? 1960년대 초 공공부조인 생활보호제도와 사회보험인 공무원연금, 군인연금을 실시함으로써 우리의 복지국가 역사는 시작됐다. 저소득층과 특수직 일부가 대상이었으니 시작은 미약했다. 하지만 1964년 산재보험, 1977년 의료보험, 1988년 국민연금, 1995년 고용보험,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 등 각종 사회보험제도가 짧은 기간 동안 압축적으로 도입됐다. 이 과정에서 대상자는 전국민으로 확대됐고, 복지비는 정부예산의 34.5%(2019년)에 이를 정도로 증가했다. 복지재화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전달체계는 공식화의 수준을 넘어 급속한 양적 성장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보험제도 중심의 복지국가 발전은 정부의 관심을 소득과 의료의 영역에 국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교육과 주택의 영역은 제외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득과 의료 분야에 건실한 안전망이 구축된 것도 아니다. 공공부조제도는 낮은 급여수준의 문제, 부양의무자 기준의 문제 등으로 1차 사회안전망으로서 한계를 갖고 있다. 사회보험제도는 임금근로자 및 자영업자를 포괄해야 하지만 대규모의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의 불완전성 때문에 광범위한 사각지대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 결과, '송파 세 모녀 사건'의 기억이 아직 생생함에도 불구하고 '탈북자 가족이 사회의 도움을 받지 못해 아사(餓死)했다'는 뉴스까지 접해야 하는 어두운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사회보장제도의 급속한 도입은 복지국가의 외형적 모습을 완성시키는데 그쳤을 뿐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데 실패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다양한 정책을 실시해 왔다. 2000년 이후의 역사만 보더라도 생활보호제도의 폐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 및 개별급여체계로의 전환, 기초연금제도와 근로장려세제 실시, 저소득층 사회보험료지원,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등 정책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포용국가를 정책목표로 설정한 현 정부는 기초연금 및 실업급여의 확대, 아동수당 도입, 문재인 케어, 치매국가책임제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복지예산도 대폭 늘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력은 여전히 소득과 의료부문에 국한된 것이다.

이러한 정책패턴은 지난 60여 년 동안 고착화된 것이었기에 쉽게 변할 것 같지 않았다. 현행 중학교 의무교육은 1985년에 도서·벽지 1학년생을 대상으로 시작된 이후 전체로 확대되는데 2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대한 공적 책임이 약한 결과 GDP대비 사교육비 비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곳이 우리나라다. 공동주택이 주류인 우리 사회에서 아파트는 절대다수가 민간건설업체를 통해 공급된다. 그렇다 보니 높은 분양가를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가 주택의 꿈을 접어야 한다.

이러한 복지정책의 패턴이 바뀌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저소득층이나 신혼부부 등을 위해 공공주택 보급률을 높이는 것이 하나의 실례이다. 하지만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올해 9월부터 시작해 2021년 전면실시 예정인 고등학교 무상교육정책이다. 소득과 의료에 국한됐던 국가의 복지정책이 주택과 교육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쿤(T. Kuhn)의 말처럼, 근본적 개념과 방법이 바뀌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이제 시작이지만 긍정적 변화는 희망을 낳는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산업화를 달성하지 못한 국가 중 우리가 가장 먼저 성숙한 복지국가로 진입할 것이라는 기대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다. 박순우 공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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