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정말 자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도시 공모 사업계획을 소개하는 대전 동구청 관계자의 목소리에 결연한 의지가 담겨있다. 그런데 지난해 한차례 탈락의 아픔을 겪은 터라, 내실을 충분히 다지지 않은 채 가시적인 성과에 연연한 것은 아닌지 노파심이 앞선다.

동구 소제동의 한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줄 알았던 주택의 전기계량기가 돌고, 현관문 틈으로는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왔다. 동구를 비롯한 대전의 골목에는 이미 오래토록 고향에 터를 잡고 묵묵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장인들의 일상이 있다. 이런저런 사업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마을이 바뀌면, 살고있던 동구민들은 기시감을 느끼지는 않을지 걱정이 불쑥 든다. 새삼스럽게 도로를 갈아엎고 시설을 서둘러 짓지 않아도, 마을은 세월의 먼지를 입고 살아 숨쉬고 있다.

외모만 번지르한 사람보다 내면의 깊이가 느껴지는 이의 향기가 더 오래 남는 것처럼, 한 도시의 문화적 깊이는 오랜 시간동안 쌓아나가야 한다. 문화도시 타이틀도 좋지만, 지금 대전에 더 필요한 것은 시민들의 `공감의 끄덕임` 한번일 지도 모른다. 교류를 통한 공감이 쌓여야 진정한 문화도시도 가능해진다. 문화만큼은 관주도의 하향식 의사결정보다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문화 예술 전문가와 기존 주민에 대한 존중을 선행해야 하는 이유다.

굳이 어디서 본 듯한 사업들을 억지로 끼워넣지 않아도, 동구에는 타 지역 그 어디도 부럽지 않은 근대문화유산들이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즈넉한 골목 곳곳에는 마을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상점 주인들과 주민, 또 그곳을 지키는 예술가들이 있다.

문체부가 이달말 동구에 방문해 현장평가를 진행한다고 한다. 공모에 지원한 25개 도시를 모두 방문해볼 계획이라고 하니 더욱 긴장이 된다. 추상적인 계획들 보다는 이미 있는 것의 가치를 재발견 해, 누구나 끄덕일 수 있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혹여 대전시민들조차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드는 계획이라면, 심사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반짝 꾸며 잠깐 들른 방문객들이 북적거리는 도시가 아닌,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품격 있는 문화도시를 꿈꿔본다.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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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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