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이야 한 포털의 코너 이름 때문에 `지식인`이 가벼운 손가락 터치나 입 놀림만으로 온갖 정보들을 알려주는 만선생이 된지 오래지만 한때 지식인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지식인은 지식계급에 속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우리나라는 백제의 왕인이 285년 천자문과 논어를 일본에 전했다는 역사기록에서 지식인의 기원을 찾기도 한다.

지식인은 역사의 변곡점마다 주·조연으로 등장했다. 신라말 집권세력에 출세길이 가로막힌 육두품 이하 지식인들은 고려 개국을 촉진했으며 고려말 신진 사대부들은 조선왕조 탄생의 이데올로그로 활약했다. 70~80년대 엄혹한 군사독재시대 일군의 지식인들은 광야의 선지자처럼 현실의 불의를 고발하고 폭압과 고통에도 깨어있는 지성으로 각성을 호소했다.

민주화에 접어들며 새로운 지식인상도 등장했다. `제2의 건국운동`을 주창한 김대중 정부는 학력에 상관없이 지식을 활용해 능동적으로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을 신지식인으로 선정했다. 1982년 KBS 공채 개그맨 1기로 데뷔해 원조 국민 개그맨으로 큰 인기를 누리다가 영화 `용가리`도 만든 심형래 감독이 당시 신지식인 1호였다. 의사 출신으로 컴퓨터 바이러스백신 프로그램을 무료 보급한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도 신지식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신지식인이 그 이름에 걸맞게 얼마나 혁신가의 길을 열어 왔는가는 별도로 우리 사회 지식인을 둘러싼 풍경은 생경해졌다. 집단지성의 부상 속에 지식인(知識人)은 더 이상 의미 있는 담론의 발화자라기 보다 앎(知)을 팔아 밥거리(食)를 충당하는 사람(人)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됐다. 밥거리가 많아 그런 걸까. 지식인의 위상은 초라해졌어도 권부 주변은 예나 지금이나 고독하지 않은 지식인이 차고 넘치고, 세상은 그들로 또 불화한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책 `오리엔탈리즘`에서 지식인을 이렇게 규정했다. "지식인은 (…) 단도직입적이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그러한 말들로 인해 높은 지위에 있는 친구를 사귈 수 없고, 공적인 영예를 얻지도 못하며, 이러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탈출할 수도 없다. 이것은 고독한 상황이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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