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은 역사의 변곡점마다 주·조연으로 등장했다. 신라말 집권세력에 출세길이 가로막힌 육두품 이하 지식인들은 고려 개국을 촉진했으며 고려말 신진 사대부들은 조선왕조 탄생의 이데올로그로 활약했다. 70~80년대 엄혹한 군사독재시대 일군의 지식인들은 광야의 선지자처럼 현실의 불의를 고발하고 폭압과 고통에도 깨어있는 지성으로 각성을 호소했다.
민주화에 접어들며 새로운 지식인상도 등장했다. `제2의 건국운동`을 주창한 김대중 정부는 학력에 상관없이 지식을 활용해 능동적으로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을 신지식인으로 선정했다. 1982년 KBS 공채 개그맨 1기로 데뷔해 원조 국민 개그맨으로 큰 인기를 누리다가 영화 `용가리`도 만든 심형래 감독이 당시 신지식인 1호였다. 의사 출신으로 컴퓨터 바이러스백신 프로그램을 무료 보급한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도 신지식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신지식인이 그 이름에 걸맞게 얼마나 혁신가의 길을 열어 왔는가는 별도로 우리 사회 지식인을 둘러싼 풍경은 생경해졌다. 집단지성의 부상 속에 지식인(知識人)은 더 이상 의미 있는 담론의 발화자라기 보다 앎(知)을 팔아 밥거리(食)를 충당하는 사람(人)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됐다. 밥거리가 많아 그런 걸까. 지식인의 위상은 초라해졌어도 권부 주변은 예나 지금이나 고독하지 않은 지식인이 차고 넘치고, 세상은 그들로 또 불화한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책 `오리엔탈리즘`에서 지식인을 이렇게 규정했다. "지식인은 (…) 단도직입적이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그러한 말들로 인해 높은 지위에 있는 친구를 사귈 수 없고, 공적인 영예를 얻지도 못하며, 이러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탈출할 수도 없다. 이것은 고독한 상황이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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