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입학원서를 내던 시절에 전공을 화학으로 선택하자, `여자가 힘들지 않을까`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한 친구는 약학대학을 지원하겠다고 하니 `셔터맨 남편을 얻게 된다`고 말리는 어른들도 있었다. 지금 같으면 셔터맨이 무슨 뜻인지도 모를 것이고, 이런 말을 했다가는 `성차별`이라고 욕을 먹기 십상이다. 그러나 21세기인 지금도 과학은 여자가 도전하기에는 어려운 분야라는 통념이 지배적이다. 지금도 대학에서 과학을 가르친다고 하면, `아하! 어려운 일을 하시네요`라는 말이 곧장 뒤따른다. 게다가 뉴스에서 전남편을 죽였다는 혐의를 받는 어떤 용의자가 화학을 전공했다고 알려지면서 `무서운 거 하시네요`라는 어처구니없는 말도 듣게 됐다. 뭐라 할 말이 없다.

여성이 과학에 약하다는 근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뇌과학적으로 성별에 따라 여성과 남성의 뇌 구조가 다르다는 것이다. 골상학이나 두개골의 크기 등으로 이를 뒷받침하려고 했다. 이제는 이런 주장을 믿는 사람은 없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여자는 언어, 추론속도에서, 남성은 공간 지각과 운동속도에서 더 나은 수행력을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차이가 성별에 따라 한쪽으로 치우친 경우는 드믈며, 개인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결론이다.

또 한가지는 여성이 체력적으로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아무리 에누리해도 여성의 체격 조건이 남성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가 연구소에서 밤을 새워 실험을 하고 국제학회에 논문을 발표할 때는 물론 힘들었다. 더 어렵게 한 것은 실험기구와 기계들이 서양 남성 체격을 기준으로 설계돼 이런저런 불편함이 늘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가 힘들다고 투덜댄 것이 너무 안이한 생각이었다는 것이 곧 판명이 났다. 결혼 후 아기를 출산하고, 육아를 시작한 첫 2년간이 내 인생에서 최고로 힘든 시기였다. 뒤돌아보면 그 시기를 무사히 보낸 것이 행운이다. 모든 여성이 감당하는 육아가 과학연구보다 체력적으로나, 지적·감정적으로 훨씬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경험이다.

그렇다면, 왜 과학 분야에서 업적은 남성이 훨씬 뛰어난 것일까? 노벨상 수상자의 통계를 예로 들어보자. 2018년 제118회 노벨상에서 55년 만에 여성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탄생했다. 캐나다 워털루 대학의 도나 스트릭랜드, 레이저 물리학 분야에서 혁신적인 업적을 인정받아 수상했다. 돌이켜 보면 역대 노벨 과학상(생리의학, 화학, 물리학상) 수상자 604명 중 여성은 3%에 불과하다. 단순히 비율만 본다면 남성이 과학에 뛰어나다는 근거가 되는 것 같다. 그러면 노벨 비 과학상(평화, 문학, 경제학상)의 경우는 어떨가? 총 수상자 301명 중에서 여성은 10% 정도로, 이것도 여성 인구 비율에 턱없이 못 미친다. 이 통계는 여성이 과학에 약하다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다만 여성이 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의 진출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여성은 정말 과학에 약한 것인가? 인종차별이 근거가 없듯이 여성이 과학에 약하다는 것 또한 근거 없는 논리다. 다만 여성이 과학 분야에 참여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 합당한 설명일 것이다. 이것은 여성을 여성답게만 키우는 교육의 탓기도 하고, 직업구조의 탓이기도 하며, 여성의 자각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고, 선진국이라 할지라도 피해가지 못하는 문제다. 여성이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만들고 활용할 수 있다면, 내재 돼 있던 수많은 새로운 것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세계최초 원자폭탄 개발계획인 맨하탄프로젝트에 한 명이라도 여성 과학자가 참여했더라면, 세계의 걱정거리인 핵무기의 양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조정미 대전대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