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 일본이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8개월 만에 경제보복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수출 관리 규정을 바꿔 7월 4일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3개 품목 첨단소재의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7월 1일 발표했다.

수출할 때마다 허가를 받도록 해서 한국 첨단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주려는 의도다. 겉으로 보기에 수출을 아예 틀어막지는 않았지만, 일본은 징용 배상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수출을 허가하지 않을 방침으로 전해져 사실상의 금수 조치라 하겠다.

일본이 수출 규제대상에 올려놓은 품목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로 반도체·디스플레이 패널 생산에서 필수적인 소재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한국을 27개 우대국가 목록에 넣어 자국 기업이 이들 품목을 한국에 수출할 때 허가를 면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왔다. 그러다가 이번에 목록에서 한국을 빼기로 한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취해진 이후 한일간 갈등은 날로 치열하게 고조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지난 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가 열렸다. 이날 WTO 이사회에 우리 정부 대표로 참석한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일본의 조치는 통상 업무 담당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상당히 무리가 많은 조치"라고 주장한 뒤, 일본 대표와의 1:1 대화를 요청했지만 일본은 우리측 제안을 끝내 거부했다.

우리측 대표로 참석했던 김승호 실장은 손꼽히는 통상외교 전문가로 최근 후쿠시마 수산물 관련 한일 분쟁에서는 WTO의 1심 판정을 뒤엎고 극적인 승소를 이끌어낸 인물이기도 하다.이에 더하여 일본은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법령 개정을 이르면 이틀 뒤인 8월 2일 취할 전망이다.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결정되면 일본은 한국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품목을 중심으로 대(對)한국 수출 절차를 대폭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 현지 언론과 업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르면 8월 2일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할 것으로 예상된다.이렇게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는 다음과 같은 빛과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먼저 빛의 측면을 보자. 아베 정부의 이번 조치는 우리 국민들의 감정을 한 곳으로 모으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동안 일본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있어도 외부로 표출하지 않았던 우리 국민들이 아베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하여 자발적으로 일본상품 불매 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반일 감정을 표출시키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이런 조치로 인하여 나타난 새로운 빛은 중소기업을 바라보는 우리 대기업들의 인식 변화라 하겠다. 그동안 우리 중소기업의 노력과 실적들이 대기업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점이 있었는데,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인하여 훌륭한 대체자 역할을 하게 된 중소기업을 대기업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당초 일본은 그들의 경제보복 조치로 한국의 경제에 커다란 타격을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질적으로 우리 경제가 흔들리지 않고 있는 것은 중소기업들의 역할이라 하겠다.

다음으로 그림자는 일본 쪽으로 드리우고 있다 하겠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일본 경제산업상이 일본의 이번 조치가 안전 보장을 목적으로 수출관리를 적절히 하려는 관점에서 (수출규제를) 재검토한 것이며,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대항(보복) 조치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지난 23일 WTO 일반 이사회에서 보인 일본측의 1:1 대화 거부를 비롯한 일련의 일본측의 태도는 명분을 잃고 있다. 더구나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경제적 충격이 일본측에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일본이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는 한일간의 갈등을 고조시킬 뿐만 아니라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후유증을 비롯한 일본 자체가 안고 있는 불편한 민낯을 사실대로 드러내야 한다는 부담 역시 일본의 그림자로 나타날 것이다.

정연철 국회입법정책연구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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