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대전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재판에 들어갔다가 씁쓸한 기억만 가지고 나왔다.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등) 재판이었는데, 온 가족이 피해자 보다는 피고인이 무죄를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 결론부터 말하면 자신을 부모처럼 믿고 따른 초등학교 6학년인 조카 A양을 수개월간 6차례 강간한 피고인은 원심과 같은 징역 8년을 선고 받았다.

A양은 믿고 의지했던 삼촌에게 수개월간 몹쓸 짓을 당하면서도 신고조차 하지 못했다. 이번 사건도 중학교에 입학한 A양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 담임교사가 상담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담임교사의 도움으로 수사기관에 신고가 이뤄지는 등 A양은 고통의 시간에서 벗어나는 듯했지만 아니었다.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강간을 당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을 번복한 것이다.

피고인 측은 A양이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것을 이유로 "강간한 사실 등이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평소 A양을 돌보지 않았던 부모도 개입하는 등 A양이 진술을 번복하는데 가족과 친척들의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로 인해 A양은 2차 피해를 입었지만 피고인은 반성하지 않고 있다. A양이 수사기관에서 한 최초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원심형을 유지한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사실만 놓고 보면 가족들은 오히려 피해자인 A양에게 합의를 종용하며 상당한 압박을 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족들의 압박에 A양은 결국 진술을 번복했고 이 과정에서 중학생에 불과한 A양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은 상당했을 것이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발생한 가족범죄 4만 460건 중 강력범죄가 859건에 달한다. 이중 강제추행 238건, 강간이 223건으로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신고되지 않은 범죄까지 포함하면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항소심 재판은 끝났지만 중학생에 불과한 A양이 앞으로도 받아야 할 정신적 고통은 누가 어떻게 책임져 줄 수 있을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재판이었다. 정성직 취재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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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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