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행정안전부 자치제도과장이었던 필자는 지방의회 의원에게 월정수당을 지급하는 지방자치법 개정 추진의 실무책임자였다. 무보수 명예직의 기본원리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반대가 있었지만 사실상 더 큰 반대는 월정수당의 지급 수준을 행안부가 아닌 자치단체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에 있었다. 지자체가 재정력을 고려치 않고 무분별하게 수당을 인상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필자는 지자체에 두는 의정비심의위원회에 지역의 전문가, 시민단체, 주민들이 참여토록 하면 지방자치 10년을 거치면서 성숙해진 주민과 시민사회의 역량에 의해 자율적으로 통제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분권과 자치의 성숙을 위해서는 이러한 자율결정에 대한 사회적 학습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법 개정 후 2006년 필자는 충남 기획관리실장이 되어 일선 현장에서 해당 규정을 집행하게 되었다. 필자의 의도와는 달리 지역 시민사회와 주민에 의한 행정통제 기능은 생각했던 것처럼 잘 작동하지 않았다. 불행히도 일부 지자체의 지나친 의정비 인상에 대한 비판 여론에 의해 시행된 지 불과 2년 만인 2008년부터 자치단체의 재정력 지수와 인구 등을 고려한 법정 기준액이 정부에 의해 제시되었다. 필자는 이와 같은 분권의 시도가 불과 2년도 안되어 중앙이 사실상 결정권을 회수하는 것으로 퇴색되는 것을 일선의 자치현장에서 체험하면서 분권과 자치, 그리고 자치역량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줄곧 생각해 왔다.

우선 자치를 위해서는 행정, 입법, 재정, 조직, 인사에 대해 중앙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지방에 주어야 한다. 이것이 지방분권이다. 지방분권은 중앙과 지방 간 권력 및 권한의 배분에 관한 일이다. 자치를 위해서는 충분한 분권이 필요하나 분권이 반드시 좋은 자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지방분권으로 부여된 자기결정권을 스스로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지방자치라고 하면 분권은 자치의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한편 지방자치는 확보한 분권을 활용하여 지방정부가 어떻게 스스로 정치와 행정을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즉 자치역량의 문제이다. 자치역량은 공무원, 주민, 시민사회, 언론 등 지역의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의 개별역량과 협업역량으로 결정된다. 결국 자치역량은 지방자치의 충분조건이다.

따라서 2005년의 지방의회 관련 분권 노력이 원래의 정책목표를 달성치 못한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분권을 자치로 연결시킬 자치역량이 미흡했다. 심지어 지자체는 언론과 주민의 비판이 있자 차라리 행안부가 기준을 결정해 달라고 했다. 둘째, 자치에 대한 우리사회의 관용이 부족했다. 다소의 미숙함을 인정하고 학습할 시간을 더 주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지난 주 행정안전부가 30년 만에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주민의 조례제정 등 참여를 획기적으로 확대하여 주민자치 원리를 강화하고 분권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와 의회의 권한을 확대하면서도 책임성, 투명성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특히 중앙-지방 협력회의 설치 등 협력관계 정립을 위한 여러 가지 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일부 지방정부에서는 여전히 분권이 부족하다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어진 권한을 잘 해내는 자치역량이다. 공무원을 위한 분권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노심초사해야 한다. 분권을 통해 지방정부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목적은 주민을 위해 행정을 잘하라는 것이지 지자체장과 공무원의 권한을 늘리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언론은 지방자치가 거버넌스의 확립을 통해 우리 사회를 성숙시키고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잘못에 대한 비판 못지않게 잘 하는 것을 많이 칭찬해야 한다. 주민은 방관하며 비판하기 보다는 주민소송·감사·조례·투표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우리의 지방자치를 함께 발전시키는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재근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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