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사람들은 빠른 자일까 느린 자일까? 국산 골프공을 만드는 회사 경영자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새로 개발한 골프공을 홍보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장타대회를 열었는데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새로 개발한 공이 다른 공보다 확실히 더 나가자 참가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는데 지역마다 특색이 있었다. 현장에서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곳은 경상도와 전라도였다. "와 직인다. 우째 이리 멀리 나가노", "워메 뭔 공이 이리 날아간다요"

강원도에서 대회를 할 때는 별 반응이 없었고, 가장 반응이 없어서 크게 실망한 곳이 충청도였다는 것이다. 분명히 자기가 친 신제품 공이 다른 공보다 더 나가는데도 아무 말이 없어서 물어보았다고 한다. "느낌이 어떻습니까?" 답변 또한 덤덤하다. "괜찮은 것 같아유"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장타대회를 끝내고 전국 영업 상황을 점검해 봤더니, 신제품이 가장 많이 팔린 곳이 충청도였다는 사실이다. 확실히 좋은 제품인 걸 확인하고 조용히 신속하게 신제품으로 갈아 탄 것이다. "말만 느리지 동작은 번개 같은 사람들이 충청도인 입니다." 이 기업인이 충청도 사람인 나에게 들려준 말이다.

정보화사회를 예측하고 이끌어온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권력이동`(Powershift) 이라는 책에서 인류는 빠른 자와 느린 자로 재편되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지금까지는 강자와 약자, 큰 것과 작은 것으로 구분하던 세상에 새로운 기준이 나타난 것이다. 싱가폴, 이스라엘, 대만이 잘 사는 것은 작지만 빠른 국가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도 빠르면 대기업을 이길 수 있다. 국가도 기업도 사람도 제품 기능도 빨라야 경쟁우위를 지닐 수 있다. 나는 앨빈 토플러의 이런 주장에 매료되어 정보화사회의 시간문제를 파고들어 `시테크` 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이 우리 사회에 시테크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시테크박사`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약 10년간 전 세계는 `속도의 경제`, `스피드경영`, `타임베이스전략` 등이 경쟁력확보의 핵심과제로 확산되었다.

그 후 제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면서 `가속의 시대` 에서 `초가속의 시대`로 전환되었고 스피드의 위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 색다른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진보와 보수는 어느 쪽이 빠른가? 진보가 더 빠르다. 진보와 보수는 이념과 콘텐츠를 가지고 싸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스피드에서 승패가 갈라지는 것이다. 심지어는 빠른 가짜 뉴스가 느린 진짜 뉴스를 이긴다. 가짜 뉴스가 먼저 확산되고 먼저 빠져 나간 뒤를 진짜 뉴스가 따라다니고 있다. 세계적으로 가짜 뉴스(fake news) 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충청도 사람은 말은 느려도, 동작은 빠른데 왜 경제발전이나 문화 발전이 더딘 것일까? 나는 이게 정말 궁금하다. 나는 이게 혹시 `속도 불일치` (speed mismatch)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충청도 사람들은 기질도 빠르고 두뇌 회전도 빠르고 실행력도 빠른데 이를 뒷받침하는 공공인프라가 받쳐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행정서비스, 민관협업체계, 공공시설운영체계, 정치문화, 문화예술 인프라 등이 빠르게 작동하지 않으면 개개인이 아무리 빨라도 그 사회 전체의 속도는 느려질 수 밖에 없다. 빠른 자와 느린 자가 만나면 속도는 평균치에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느린 자에 맞춰지기 때문이다. 초가속사회의 스피드경쟁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심신을 지치게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슬로우 문화` 다. 일하고 경쟁할 때는 빨라야 하지만 수시로 느림을 통해 충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가속의 시대가 진행될수록 느림의 가치와 여가 요구도 커질 것이다. 사람들은 KTX열차가 더 비싼 것을 알면서도 이용한다. 소중한 시간을 돌려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서비스가 빨라지면 시민들은 더 많은 여유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초가속시대의 고품질 행정서비스다. 시테크는 개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가 속한 사회의 시간문화와 시간인프라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초가속시대를 맞아 민관이 힘을 합쳐 우리 사회 시간문화를 과감하게 혁신시켜보면 어떨까.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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