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공경(恭敬)이란 말이 어색하게 들린다. 어디에 있든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 어른이나 선배를 공손히 모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왜 그럴까? 각박한 사회에서 생존 경쟁을 하다 보니 위아래를 가릴 여유가 없어 그런가? 너도 나도 공경할 대상이 없는가? 나 이외는 잘난 사람이 없는가? 아닐 것이다. 자기중심적 사고가 팽배한 사회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마음을 거울삼아 누가 보든 안 보든 어디서든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게 한다는 것, 이것이 곧 경(敬)이다. 꼭 가져 지켜야 하는 것이다.

주역(周易)에 "군자가 경하여 안을 곧게 하고 의로워 밖을 방정하게 한다. 그리하여 경과 의가 확립되면 덕이 외롭지 않으니, `곧고 방정하고 커서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행하는 바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君子 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德不孤 直方大 不習無不利 則不疑其所行也)."라는 말이 있다.

경 한다는 것은 오로지 하나를 주장하는 주일(主一)을 이르고, 이때 일(一)은 여기저기 엿보아 딴 데로 가지 않는 무적(無適)을 말한다. 의는 도리(道理)로 종사하는 것을 이른다. 그래서 주일무적하면 경하게 되고 도리에 따르면 의롭게 되는 것이다. 왜 경은 안을 곧게 하고 의는 밖을 방정하게 하는가? 남송시대 성리학자 진덕수(眞德秀)는 "경하면 마음이 사사롭거나 간사함에 얽매임이 없어지니 안이 이 때문에 곧아지는 것이요, 의로우면 모든 사물이 각각 그 분수에 합당하니 밖이 이 때문에 방정해 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경직은 털끝만 한 사사로운 마음도 없어서 가슴 속이 환하여 위와 아래가 통해서 표리가 한결같은 것이요, 의방은 옳은 곳에는 결단코 이렇게 해야 하고 옳지 않은 곳에는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함을 알아서 절연(截然)히 방방정정(方方正正)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때문에 경과 의를 체(體)와 용(用)으로 삼은 것인데, 언제 어디에 있든 누구든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서예도 `경의`가 있는가? 서법도 법고(法古)와 창신(創新)을 체와 용으로 삼는 것을 중시한다. 이와 더불어 서예의 근본은 마음이다. 안에 있는 마음이 밖으로 보여 진 것이 서예다. 경으로써 안을 곧게 한 것이 밖으로 보여 진 것, 이것이 의로움인 만큼 서예도 경의가 당연히 존재한다.

정자(程子)는 서예의 근본정신과 실천을 이 경의 사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내가 글씨를 쓸 때 매우 경한 마음으로 쓴다. 이것은 글자를 잘 쓰고자 해서가 아니라 다만 이것이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 `사자시심경(寫字時甚敬)` 사상은 주자에 이어 이황 역시 그 의미를 놓일 리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황은 이 경자지의(敬字之意)를 학문과 삶의 지표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서예의 근본사상과 실천의 지표로도 삼아 본받으려 노력한 학자였다. 그래서 그의 서예를 `경의 서예`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특히 그가 서법에서 이 사상을 굳게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의리에 관한 점이다. 당시 유행하던 서체가 실절(失節)한 서예가 조맹부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맹부와 장여필이 후학을 그르친다고 그의 시 습서(習書)에서 일갈(一喝)한 것이다. 그는 "자법(字法)이란 애초부터 심법(心法)의 나머지라, 글씨를 익힘이란 명필 되려 하는 것이 아니다. 창힐·복희 창조함이 스스로 신묘하고, 위(魏)와 진(晉)의 그 풍류 어찌 생각 소홀하리. 오흥(吳興)의 걸음 배움 옛 것마저 잃을 듯하고, 동해(東海)를 본받으면 헛될까봐 두렵네. 다만 한 점 한 획에도 전일(專一)이 있다 하면, 인간의 헛된 훼예(毁譽) 관계치 않으리라"고 읊었다. 이 일갈은 곧 그들의 인품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주장은 모두 경을 실천하는 `주일무적`이다. 현재의 사회나 서예계도 `경의`의 실천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송종관 서예가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