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참사 총제적 부실 국민분노

1년 전 꼭 이맘때다. 29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병원 치료를 받은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건이 일어난 지 꼬박 1년이다. 한 해 끝머리에서 차분하게 연말을 보내고 있었던 제천지역은 뜻하지 않은 화마를 맞닥뜨리며 큰 슬픔에 잠겼다. 지역의 대표적인 스포츠센터에서 불이 나면서 순식 간에 많은 인명피해를 낸 현장을 지켜본 제천시민과 국민들은 슬픔과 함께 화가 치밀었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의 어설픈 구조활동에 분노한 것이다.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은 실종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준 탓이다. 아직도 일부 유족과 시민들은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화재 현장에서 살려달라고 절규하던 희생자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족 중엔 1년이 넘도록 정신과 치료를 받는가 하면 일부는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기도 했다. 이곳 시민들은 희생당한 가족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채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살아가고 있다.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건 추모비를 세워 희생자의 넋을 위로할 뿐이다.

제천 참사는 초등대응 실패, 지휘부 소방통신망 관리 부실, 진화활동 미비 등 총체적 부실에서 비롯된 인재로 기록됐다. 무엇보다 화재현장 주변의 많은 주차 차량으로 소방차 진입이 지체되면서 화를 키웠다. 이 때문에 충북소방관계자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불이 난지 1년이 지난 화재 현장의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소방당국이 최근 사고 현장에서 소방통로 확보 훈련을 벌였지만 1년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도로 양쪽으로 주차된 차량 때문에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점은 1년 전과 똑같았다는 게 훈련을 한 소방관계자의 말이다. 당시에도 불법 주·정차 차량 탓에 16t급 대형 고가사다리차는 500m를 우회해야 했고, 골목길마저 비좁아 사다리를 제때 펴지 못했다. 화재 참사의 교훈을 비웃기라도 하듯 골목 곳곳에는 여전히 불법 주정차 차량이 넘쳐 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민의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실 우리 국민의 안전의식은 그리 높지 않다. 위안을 삼는 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는 높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지역안전지수를 보면 안전사고 사망자 수가 최근 3년간 꾸준히 감소하면서 지난해 전체 사망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10%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교통사고나 자살 등에서 사망자 수가 줄어든 반면 화재는 증가했다. 최근 5년간 21만 5093건의 화재가 발생해 1536명이 소중한 생명을 잃고, 9143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중 음식점에서 발생한 화재는 1만 3416건으로 가장 많고 고시원 등 일상서비스 시설에서 5826건, 오락시설 1329건, 위락시설이 1078건에 달한다.

대전과 세종, 충남북 등 충청권 화재안전지수는 광역단체 중에서 하위권을 맴돈다. 세종은 화재와 생활안전지수가 최하위인 5등급, 대전의 안전지수는 평균 3.7 등급을 받으며 광역시 중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 안전에 취약한 지역으로 꼽혔다. 시는 매년 안전 관련 예산을 늘리고 있지만 안전지수 등급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도 연말을 맞아 사건사고의 연속이다. 12월엔 주로 음식점이나 주점, 노래연습장 등 생활서비스 시설에서 화재가 나 인명피해를 가장 많이 낸다. 이달 들어서 만도 3명의 목숨을 앚아간 강릉 수능 수험생 펜션사고와 비정규직 청년의 태안화력발전소 사망사고, 198명을 태운 강릉발 KTX 열차 탈선 및 KTX 오송역 전기공급 중단 사고, 경기도 고양시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 사고 등 크고 작은 인명 사고가 줄을 잇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안전부주의로 많은 생명이 희생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안전기준을 강화하고 재발방지를 강조하지만 그때뿐이다. 더 불안케 하는 것은 안전불감증이다.

연말 송년회식이 잦은 때다. 부득이하게 음식점과 노래방을 가게될 때면 만일의 위급 상황에 대비해 미리 비상구 위치를 확인하는 버릇을 들이자. 안전은 본인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점도 명심하자.

곽상훈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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