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두 살의 어머니가 일흔 한 살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6·25 전쟁 통에 헤어졌던 네 살 배기 아들을 65년이란 세월이 지나서야 만난 것이다. 지난 20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한 장면이다. 칠순이 되어서야 엄마 품에 안겨보는 아들의 심정을 어떤 말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아들을 만나러 갔다가 사망 소식을 듣고 며느리만 만나 눈물을 흘린 백발 아버지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2년 10개월 만에 재개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하나같이 애끓는 사연이 넘쳐났다. 행사장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고 지켜보는 이들도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꿈에 그리던 만남이 이뤄졌지만 이를 지켜보면서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분단이후 70년 가까이 오늘일까 내일일까 만날 날만을 학수고대하고도 명단에 끼지 못한 이산가족들이다. 남의 상봉마저도 더없이 기쁜 일이지만 북녘에 가족을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이번을 포함해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은 21차례다. 한 번에 기껏해야 100명 정도만 기회가 주어지다 보니 상봉자 명단에 뽑히는 것이 로또 당첨이나 다를 바 없다. 이번 상봉에서도 겨우 89명만 행운을 잡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 `로또 상봉` 마저도 이제는 기다리기가 어렵게 됐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 달 기준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등록자는 13만 2000여 명이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7만 5000여 명은 이미 사망했고 5만 6000여 명만 생존해 있다고 한다.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들도 90세 이상이 21%, 80세 이상이 63%나 된다. 이러다 보니 매년 4000명 정도가 이산의 아픔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난다. 지난 7월 한 달 만해도 316명의 이산가족이 북측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고령인 이산가족들에겐 남아 있는 시간이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알 수 없다. 다음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할 수가 없다. 눈을 감기 전 딱 한번이라도 가족을 보고 싶다는 말이 더 애틋하게 와 닿는 이유다.

북녘의 가족을 만났어도 애달프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나긴 이별 뒤의 짧은 만남은 70년 쌓아두었던 회포를 풀기엔 너무나 부족한 시간이다. 말이 2박 3일간의 일정이지 실제로 만남은 6차례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시간이 정해져 있어 다 합쳐봐야 11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이벤트로 진행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이번 상봉에선 가족들만의 오붓한 개별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고 작별 상봉도 1시간 늘어나 다행이다.

분단으로 혈육이 생이별한 나라는 지구촌에서도 우리가 유일하다. 그것도 1-2년이 아니고 70년 가까이 만나지도 못하고 있다. 어떤 이유를 들이댄다 하더라도 도저히 있어선 안 될 일이 벌어지고 있다. 모든 것을 떠나 이산가족들의 만남을 최우선적으로 주선해줘야 한다. 지금까지 북측 가족을 만난 이산가족은 2000여 명에 불과하다. 지금과 같은 상봉행사로는 몇 백 년이 걸려도 다 만나지 못한다. 남북 이산 문제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아픔이기도 하다. 더 늦기 전에 전면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도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상봉 정례화 등을 북측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적십자 회담을 통해 전면적 생사확인과 상설면회소 등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거니와 추진이 아니라 반드시 성사시켜야 하는 일이다. 어쩌면 정부가 이산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상봉 이전이라도 화상통화부터 가능할 수 있도록 해주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에겐 이제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남북 모두가 잊지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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