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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도덕성은 의무를 갖는다

2018-07-08기사 편집 2018-07-08 14: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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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7년, 백년전쟁 당시에 프랑스 북부의 항구 도시 칼레는 영국군에게 포위당한다. 일 년을 버티던 칼레 시는 결국 항복을 선언하고,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자 왕은 그동안의 반항에 대한 대가로 시민 대표 6명을 교살하겠다고 선포한다. 이 말을 들은 칼레 시민들은 혼란에 빠지며, 자신이 희생양이 되기를 주저한다. 그때 칼레 시에서 최고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를 필두로, 상인과 법률가 등 6명의 부유한 귀족들이 시민들을 대신하여 희생을 자처한다. 사형 당일 날 왕은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받아들여 이들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극적으로 살아난 여섯 명의 용기와 희생정신은 한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어 지금까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17세기, 조선의 경주 최씨 집안도 300여 년 동안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였다. 대대로 재물에 대한 욕심을 경계하는 '절제', 주변 이웃들과 더불어 사는 '나눔',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사지 않는 '배려'의 정신을 이어온 종가로 칭송받는 가문인 것이다. 고택에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공공에 헌신하라는 '대우헌(大愚軒)', 2등도 중요하다는 '둔차(鈍次)'라는 선조의 호를 편액으로 걸어놓은 것만 보더라도 부자는 겸손해야 한다는 집안의 고귀한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얼마 전 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에 애도와 더불어 여론의 따뜻한 소식이 더해졌다. 재벌 3세였지만 소탈한 성격에 주변을 배려하는 마음이 회자되며,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의 이미지가 부각된 것이다. 그는 기업이 지녀야 하는 사회적 책임에도 앞장서서 국가와 사회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의인상'을 만들어 표창하기도 했다. 꿈 잃은 학생에게는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주었으며, 생의 마지막까지도 검소함과 배려를 실천한 미담은 사후에도 계속 회자되고 있다.

반면 요즘은 이와는 사뭇 다른 회장님의 이야기가 매스컴에서 날개를 단 채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국민과 여론의 반응도 질타를 넘어서 분노와 집단행동까지 불러오고 있는 상황이다. 자녀의 갑질로 시작된 도화선이 이제 회장 본인뿐만 아니라, 부인과 자녀까지 '갑질 3종 세트'가 되어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총체적 난황(難況)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포토라인에 선 자녀의 모습을 보고, "너희 집안은 왜 다 그 모양이냐?"라고 한 시민의 일갈이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비치고 있으니 말이다. 한쪽은 칭송을 받고, 다른 한쪽은 지탄을 받는 이유를 굳이 부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명예는 주변에 인정받아 얻은 평판으로 지위나 권력, 재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지도층들에게는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더욱 엄격하게 요구되기에 국민들은 다른 사람보다 촘촘한 잣대를 들이대기도 한다. 하지만 지도층의 도덕적 실천이 꼭 그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도덕적 책임이 있고, 그것이 개개인에 따라 다르다 뿐이지 모두가 행해야 하는 당위적 명제이다. 중요한 것은 책임의 경중(輕重)과 대소(大小)가 아니라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명예와 그에 따르는 의무는 재벌과 고위층뿐만이 아니라 누구나가 지니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넘어서 '도덕성은 의무를 갖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지켜야만 하는 도덕적 책무가 있다. 이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기에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는 나보다 높은 곳을 보고 오르려 노력해야 하지만,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낮은 사람에게 따뜻하게 손길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웃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爲隣流淚)' 마음과 '남을 받들고 자기를 낮추며(貴人而賤己), 남을 먼저 하게 하고 자기를 나중에 하는(先人而後己)' 공동체의 정신을 깊이 새기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김하윤(배재대학교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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