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산(高野山)이 오사카 도심에서 생각보다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는 여행자들이 적지 않다. 오사카 시내 난카이 난바(南海 難波) 역에서 난카이 전철(南海 電鐵)을 이용해 1시간 반이면 주파할 수 있는 오사카 남쪽 70㎞ 지점의 기이반도(紀伊半島)에 들어서 있는 고야산 일대에 내 삶을 되돌아보는 색다른 사색의 여로(旅路)가 펼쳐진다.

일본 간사이(關西) 기이반도 와카야마(和歌山)현 고야산은 1200여 년의 종교적 수행의 역사를 지닌 일본 3대 영지(靈地)중 하나다. 8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인 분지 지역으로 연꽃 모양을 닮은 이곳은 해발 1000m 전후의 산봉우리가 펼쳐지는 심산유곡에 자리 잡은 일본불교 성지다.

오사카에서 출발한 난카이 전철이 하시모토 역에 도착하면 사쿠라 줌카가 대기하고 있다가 환승객들을 태우고 고야산을 향해 달린다.

하시모토에서 고야산 전철의 종착역인 고쿠라쿠바시(極樂橋)까지의 산악열차 구간은 19.8㎞에 이르는데 급경사와 급커브의 철로를 달리다 보니 운항시간은 무척 더뎌 40여 분에 이른다. 이 산악열차 운행 구간 중에는 철길이 단선인 구간도 있어 올라가는 기차가 지나가면 대기하고 있던 하행 기차가 내려간다. 산세가 험해 느림보 운행이지만 객차 창밖으로 펼쳐진 대자연의 세계는 이제까지 봐왔던 일본 산하의 풍경과 사뭇 다르다. 북미의 서부 캐나다 지역의 캐나디안 로키 산악지역에서 봤던 울창한 숲이 떠오른다. 나무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어 있기도 하고 산 중턱에 운무가 끼어있는 광경을 보노라면 그 산속 깊은 곳에서 신선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빽빽하게 산을 감싸고 있는 나무들 사이에 간간이 한두 채씩 보이는 일본전통 가옥이 자연풍광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엽서 장면처럼 아름답다.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저런 외딴 숲속에 사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면서 살까. 아니면 어쩌다가 짬 날 때마다 들러 심신의 피로를 내려놓고 가는 별장인가. 여러 가지 상념들이 스쳐 지나간다. 대자연의 한쪽 공간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마냥 부럽다. 낯선 곳에서 생각지 못한 것을 보거나 경험하는 게 여행의 기쁨 중 하나가 아닌가. 산악전철 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경치에 마음을 두다 보면 여정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해발 538m 지점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고야산 노선의 종착역인 고쿠라쿠바시(極樂橋) 역에 도착해서는 밑변 1㎞ 구간에 높이 330m를 기차로 올라가는 건 불가능하기에 급경사를 오가는 케이블카로 바꿔 타고 해발 867m의 고야산 역에 비로소 도착한다.

고야산 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고야산 안 관광단지 쪽으로 들어가자 더욱 신비스럽고 하얀 고야산의 속살이 드러난다. 아직도 울창한 숲이 마음 한 곳에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캐나다 밴쿠버, 그것도 웨스트 밴쿠버의 어딘가에 서 있는 느낌이다.

일본인 중에는 1200년 전, 일본 진언종(眞言宗) 창시자인 고보대사(弘法大師·홍법대사)가 42세 때 중생들의 재난을 구제하기 위해 시작한 것에서 유래한 시코쿠 88영지 순례 길에 기꺼이 나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12세기부터 대사의 제자들이 대사의 업적과 발자취를 기리는 88개 사찰 순례를 일상화했는데 17세기 들어서 일반인들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 순례의 밑바탕에는 "인간에게는 88가지의 번뇌가 있고, 시코쿠영지 88개소를 순례함으로 번뇌를 없애고,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있다. 도보 순례에 나서면 건장한 남자도 한 달 보름 정도, 자가용을 이용하면 최소 10일 정도 소요된다. 이 시코쿠 순례 여정은 고보대사가 입적한, 이 모든 순례 중 가장 중요한 영험(靈驗)코스로 알려진 고야산 곤고부지(金剛峯寺) 참배로 마무리된다. 신수근 자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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