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압박이 갈수록 가관이다. 미 상무부가 한국 등 12개 국가의 철강제품에 대해 53%나 되는 초고율 관세 부과방침을 밝혔다. 그것도 캐나다·일본· 영국·독일·대만 등 미국의 우방은 빠졌지만 한국만 중국·러시아 등과 함께 포함됐다. 이는 상무부가 제시한 3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이긴 하지만 어떤 것을 선택하든 우리의 철강업계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지난달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해 세이프가드( 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다. 한국산 반도체의 특허침해도 현재 조사 중이다.

알다시피 트럼프는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한미FTA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며 `재앙`이니, `끔찍한 협정`이니 떠들어댔다. 당선되면 재협상을 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힌 바 있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거나 중국산 제품에 45%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공약도 했다. 막말과 기행을 일삼는 트럼프의 황당한 공약쯤으로 여겼지만 그게 아니었다. 취임이후 대미 흑자 국가들을 대상으로 세이프가드, 301조 등을 동원해 사실상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중에 한국은 예외가 없었고 FTA 재협상을 비롯해 구체적인 제재가 하나 둘 실행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가장 많이 본 나라는 중국으로 3752억 달러나 된다. 그 다음이 멕시코(711억 달러), 일본(688억 달러), 독일(643억 달러) 등이다. 한국은 열 번째인 229억 달러로 사사건건 제재를 받아야 할 만큼 흑자규모가 크다고 할 수 없다. 더욱이 한국은 지난해 대미 흑자가 큰 폭으로 줄어든 유일한 나라다. 철강제품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대미수출 3위이긴 하지만 1위인 캐나다와 7-9위인 일본·독일·대만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는 전통적인 우방이자 군사동맹국인 한국을 표적으로 삼고 있음이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을 동맹으로서 남달리 여겼던 게 사실이다. 미국도 우리와 같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없지 않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를 지켜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미국, 특히 트럼프는 한국은 동맹의 수혜자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 트럼프는 이른바 `호혜세` 방침을 공개하면서 "동맹국도 무역에 대해선 동맹국이 아니다"고 분명히 밝혔다. 특히 한국에 대해선 "6·25전쟁 이후에 도왔고 그런 나라들이 되갚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군사동맹에서 혜택을 봤으니 경제에서 비용을 지불하라는 얘기다. `경제엔 동맹도 소용없고 오직 미국이 우선`이라는 트럼프의 생각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작금의 철강 사태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시작하면서 산업구조가 비슷한 한국에 불똥이 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한국이 저렴한 중국산 철강을 수입해 가공한 뒤 미국에 수출하는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사전에 이를 문제 삼았음에도 시정되지 않아 제재를 추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대북 정책에 미국과 엇박자를 보이고 있는 한국에 대한 `압력`이라는 견해까지 나오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한국기업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봐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하라"고 밝혔다. WTO(세계무역기구) 제소와 한미FTA 위반 여부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도 넘은 통상압박에 대한 정부의 당연한 대응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처를 하는 게 현명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이 아니더라도 먹고 살 수 있는 수출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 의존율을 낮추고 시장을 다변화 하는 게 시급하다. 그렇지 않고는 미국의 통상압박을 벗어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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