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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평] 이 시대 명인 명창 '황병기'

2018-02-13기사 편집 2018-02-13 17: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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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31일, 가야금명인 황병기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났다. 뉴스를 통해 접한 이 소식은 필자에게는 마치 영화 속 슈퍼맨이 세상을 떠난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지금은 '고전음악'이라 지칭하고 있지만 필자가 가야금을 처음 접하기 시작한 1980년대에 황병기 선생의 작품들은 가히 전설과도 같았다. 독특한 양 손 연주법, 난해한 선율 진행, 틀을 깬 장단 구조 등 기존의 전통음악과는 또 다른 맛을 가진 그의 작품들은 가야금연주자라면 언젠가는 꼭 연주하리라 다짐하게 만드는 로망의 곡들이었다. 당시 필자는 유독 '침향무'라는 곡을 좋아했는데, 그 곡이 담긴 테이프는 너무 많이 들어 나의 작은 카세트 안에서 늘어진 채 운명을 다하곤 했었다.

슈퍼맨, 천재인 줄만 알았던 황병기는 2년 전 한 인터뷰에서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다닐 때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야금 연습을 해왔다"며 "연주자가 된다는 것은 연습의 연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스스로 연습벌레임을 밝힌 바 있다.

고교 시절 전국 국악 콩쿠르에서 수상하면서 가야금에 두각을 나타냈던 황병기는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대 음악대학 강의, 명동극장 지배인, 화학 회사의 기획관리, 출판사 사장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도 매일 가야금을 연습을 했다고 한다. 실제 그는 타계하기 바로 전 해인 지난해, 81세의 나이로 미당 서정주의 시 '광화문'에 곡을 붙인 새 작품을 내놓았다.

이렇듯 가야금 명인이자 작곡가인 황병기는 1962년 서정주의 시에 곡을 붙인 '국화 옆에서'와 한국 최초 가야금 현대 곡으로 통하는 '숲'을 발표한 후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의 작품은 늘 파격적이었다. 특히 1975년 '미궁(迷宮)'은 세간에 화제였다. 미궁은 가야금을 전통적으로 연주하는 대신 첼로 활, 장구채, 거문고 술대 등으로 긁고 두드리며 연주하고 현대무용가인 홍신자의 울부짖거나 웃는 소리 등 새로운 현대음악기법으로 작곡된 작품이다.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기괴한 소문도 가져오게 했던 미궁은 그만큼 놀라움과 새로움 그 자체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에는 범 아시아적 음악이 넘실거린다. 그가 작곡한 침향무, 비단길 등은 신라음악을 되살린 시도와 페르시아 유리그릇에서 영감을 얻는 등 전통을 품는 동시에 아시아적 성격까지 포용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황병기가 한국음악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한 독보적인 존재임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15여 년 전 황병기 선생을 인터뷰하기 위해 약속을 한 전 날, 나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잠을 뒤척였던 기억이 난다.

"집도 전화번호도 처음 그대로예요. 저는 변화를 싫어합니다. 태어난 집에서 지금껏 살고 있는걸요. 하물며 아내도 그대로인걸요. 하하하하.. 하지만 음악은 다릅니다. 음악은 변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는 이 시대의 음악을 해야지요."

"내가 작곡을 하고 곡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마치 목말라 했던 사람들처럼 음악을 흡수했어요. 그동안 한국음악은 너무 정체적이었거든요."

한국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그렇게 답했다. 가야금을 평생의 업(業)으로 알고 죽을 때까지 가야금만 해야겠다고 38살에 다짐을 했다는 황병기 선생. 필자는 그의 인터뷰 내내 그가 얼마나 가야금과 가야금 음악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가수 싸이와 그룹 노라조를 좋아했다는 황병기는 다시금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굳어진 옛것만 즐긴다면 그것은 전통이라기보다 골동품이지요."

숲, 침향무, 비단길, 미궁, 춘설, 달하 노피곰 등 놀라운 그의 작품 그리고 뉴욕 카네기홀 가야금독주회, 하와이의 '20세기 음악예술제', 유럽도시 순회공연, 일본 요미우리 신문사초청 일본순회공연 등 그의 세계적인 공연 활동과 특히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첼리스트 장한나, 현대무용가 홍신자, 발레리나 김지영 등과 전통국악에 다양한 장르를 결합함으로서 국악의 지평을 확장시켰다. 1974년부터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본격적으로 교육에 매진한 황병기 선생은 현대 국악을 개척하면서 민족적 경계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표현해 내는 진정한 예인. 우리 곁에 황병기는 영원할 것이다. 조석연 대전대 H-LAC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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