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어느 지인으로부터 암호 화폐(가상 화폐)에 투자할 것을 권유받은 적이 있다. 지인은 자신이 가상화폐를 통해 많은 돈을 벌었다고 자랑을 하면서 내게도 자신이 소개하는 암호 화폐에 투자하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투자한 암호 화폐에 대해 자세하게 안내를 한 다음 내개 고급 정보를 제공해 줬으니 고마워하라고 했다. 사실 암호 화폐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던 나는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암호 화폐는 실제 화폐처럼 실물이 있는 것이 아니면서도 경제적 가치를 발휘하는 블록체인 시스템이다. 암호 화폐는 실물 경제와 실제 화폐의 가치가 불안정할 때 오히려 안정적인 거래 수단으로서 매력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유용한 투자의 대상으로 여긴다. 그 종류는 수백 종에 이를 정도로 다양하지만, 최근 들어서 몇 몇 인기 있는 종목들을 중심으로 유통이 과열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300만 명 이상이 투자를 하면서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가상 화폐와 관련해 사기나 폭력 사건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가 암호 화폐가 유혹하는 한탕주의 내지는 물신주의로 인해 벌어지는 비인간적 사건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돈을 투자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그런 현상이 지나쳐서 건전한 투자가 아닌 한탕주의적 투기 성향으로 나아간다는 데 있다. 암호 화폐가 원래 안정적인 화폐 가치를 추구하면서 출발한 것인데 지나친 투기로 인해 불안정적인 투기 수단으로 변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암호 화폐 현상은 분명히 건전한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은 아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가상 화폐 투자자들이 대박의 망상으로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있다. 건강한 노동이나 건전한 투자가 아닌, 무모한 투기에 기대어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타락한 자본주의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엇나간 자본주의 혹은 암호 화폐의 문제 때문에 불안한 사람들에게 돈의 가치에 대한 가상 진실의 세계에 귀를 기울여 볼 것을 권한다. 에밀 졸라의 소설 `돈`은 19세기 프랑스의 증권계를 묘사한 소설이지만, 오늘의 자본만능주의에 빠져 든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문제를 제기한다. 이 소설에서 `사카르`라는 주인공은 정치권력의 도움을 받아 은행을 설립하고 많은 돈을 번다. 그런데 `사카르`가 돈을 추구하는 방법이나 목적은 문제투성이였다. 그가 돈을 벌려는 목적은 오직 돈이 가져다 주는 쾌락과 권력을 위해서다. 그는 사랑 없이 돈 많은 여인과 결혼을 하고 아들과 한 여인을 공유할 만큼의 비윤리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온갖 불법을 동원해 주가를 조작하여 많은 돈을 벌고 수많은 개미투자자들을 끌어 모으지만, 결국 측근의 배신으로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만다. `사카르`는 우리에게 돈이 인간을 얼마나 추악하게 만드는가를 깨닫게 해 준다.

암호 화폐 때문에 심란한 사람들은 `돈`을 읽으면서 가상 진실을 채굴해 보기 바란다. `사카르`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돈의 궁극적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면, 암호 화폐를 비롯한 돈 문제에 대해 보다 냉철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돈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는 것, 돈을 목적으로 삼는 순간 `사카르`와 같은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을 마음 깊이 새겨둘 필요가 있다. 천민자본주의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이형권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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