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너는 나와 어떤 의미로 보면 동창생이랄 수도 있지 않겠나?! 진성 이씨, 노송정 가문에 종부로서 30년 전후로 너와 내가 입학하고 지금 몇 년(?) 겹친 현실에서 선후배로 유세 떨다, 나 떠나고 나면 지금 내 위치에 네가 서 있을 생각하니 만감이 가슴을 휘 누비는구나. 우리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너 답고, 나답도록 태산 같은 자긍심을 갖자 구나…흔히 사람들은 사랑은 소득세와 같아서 그 계산법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하지만 우리, 너와 나는 종이 한 장 끼울 여백도 두지 않는 꾸밈 없는 사랑의 계산법을 쓰자구나. 한해 한해 나이테를 두루는 말 없는 나무들처럼."

진성이씨 노송정 18대 종부 최정숙이 2004년 시집 온 맏며느리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종가(宗家)는 한 문중에서 맏아들로만 이어 온 큰집이다. 종가의 안살림을 책임진 이가 종부(宗婦), 종가의 맏며느리이다. 며느리는 어원상 메나리, 메누리에서 파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메나리는 진지와 밥을 뜻하는 메와 나르다로 분석된다. 풀이하자면 며느리는 시집 식구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고 제사 때 신에게 드릴 메를 나르는 일을 도맡은 사람이다.

종부에게 제사는 일년 열 두 달 끊이지 않는 일상이었다. 제사 뿐 아니다. 일가친척 등 종가를 찾는 사람들 누구나 잘 대접하는 접빈객도 종부의 중요한 덕목이었다. 자연스레 종가는 음식문화가 발달했고 종부들은 요리 솜씨도 뛰어났다. 하지만 종부의 길은 고되고 외로웠다. 오죽했으면 딸이 종손과 결혼하겠다고 하면 부모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반대했을까. 힘든 만큼 종부는 자부심도 컸다.

"내가 만일 종부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진즉에 칼을 물고 자진(自盡)을 했을 것이다. 열녀가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 허나, 내가 그 참담한 형상 중에도 목숨을 버리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오로지 종부였기 때문이었느니라. 내게는 남의 가문의 뼈대를 맡은, 무거운 책임이 있었던 것이다. 종부는, 그냥 아낙이 아니리라."

최명희 대하소설 `혼불`의 한 대목이다. 혼불은 종부로 이어지는 며느리 삼대담의 형식을 취한다. 열아홉 살에 시집와 신행도 오기 전 남편을 잃은 종부 청암부인은 죽음 보다 더한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고 종가를 일으켜 세운 후 종부는 그냥 아낙이 아니라고 고백했다. 이순신 15대 종부가 근래 현충사 관련 언론지상에 자주 오르내린다. 그는 종부와 아낙, 어디쯤에 있을까.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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