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바라밀경`에서 "화를 내는 것은 독주(毒酒)를 마시는 것과 같다. 얼굴이 붉어져 갖가지 추한 모습을 보이며 몸과 마음은 두근거리며 남을 비방하며 괴롭힌다. 이같이 노여움의 불이 마음을 태운다면 어떻게 마음을 닦을 수 있겠는가. 마음을 닦는 사람은 응당 이것을 멀리해야 한다"라고 설하고 있다. 그리고 잡아함 42권 1153경 `건매경(健罵經)`에선 "아무에게나 마음대로 욕하거나 모욕을 주어서는 안 된다. 너를 화나게 하거나 원한이 있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몸과 마음이 청정해서 때가 없는 사람에게 나쁜 말을 하면 허물은 도리어 자기에게 돌아가게 된다. 마치 바람을 거슬러 흙을 뿌리면 그 흙이 되돌아와 자신을 더럽히는 것과 같다" 라고 화를 내면 입게 되는 허물을 지적하고 있다. 화가 났을 때를 들여다보면 화를 다스리거나 그것에 제압당하는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누구나 화가 난다면 그것을 누그러 뜨리고 화의 원인을 파악해서 제거하고 싶지만 막상 내게 닥친 열불과 같은 화에 제압당해 그것을 다스리려는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참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인내는 그만큼 성스러운 것이라 하겠다. 이 세상에는 순간을 참지 못해 소중한 인생을 그르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럼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해야 지혜롭다고 할 수 있을까? 참는다면 화병이 걸릴 것이고, 표출하면 서로 원수 짓는 일이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린 화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깊이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것은 마음에 대한 불교적 통찰의 형상화이기도 하다. 선과 악이 나뉘기 전, 분노와 기쁨이 나뉘기 전을 보는 것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마음을 본다, 마음을 닦는다고 한다. 내가 대상을 보는 방식을 내려놓을 때, 자아를 세우지 않을 때 마음을 바로 보는 일이 일어난다. 그러니까 지금 화가난다면 그것을 억제하는 대신, 화를 내고 있는 이 현장과 하나로 만나보기를 불교는 제안하는 것이다. 결국 화는 나의 아상(我相)이 바탕이 되어 내가 옳다고만 생각하고 남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때 화가 나는 것이고, 옳고 그름이 객관적인 것이 아니고 주관적일 때 자신의 입장만 생각해서 오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화를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이 뜻은 처지(處地)를 바꾸어서 그것을 생각하라고, 다른 사람의 입장(立場)에서 헤아려보라는 말이다. 종교를 떠나서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소망한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소통하는 순간 이루어지리라고 여겨진다. 또한 현대 우리 사회는 절대적 빈곤이 아닌 상대적 빈곤이 팽배해 진 것 같다. 옛날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처럼 못 먹고 못 입는 시절도 아닌데, 서로 비교해서 빈곤함을 느끼고 스스로 좌절하며 괴로워 한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지족(知足)을 말씀하셨다. 욕망은 끝이 없어서 만족함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행복 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이와 같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만족함을 알 때, 욕구불만(欲求不滿)으로 인한 화를 다스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부처님은 `육바라밀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참지 못할 것을 참는 것이 만복(萬福)의 근원이다" 그리고 `법구경`에는 이런 말씀도 있다. "화를 내면 법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노여움을 제거해야 복과 선이 항상 따르게 된다" 이와 비슷한 얘기는 우리 속담에도 나온다. "하루를 참으면 백날이 편하다" 이처럼 화를 다스릴 때 복도 짓고 복도 받아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한순간만 잘 참으면 부처도 이룰 수 있고 밝은 지혜를 얻어 현인도 될 수 있으며 원만한 복과 덕도 구족할 수가 있다. 다사다난(多事多難) 했던 정유년 한 해가 가고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올 새해에는 지혜롭게 화를 다스려서 복덕(福德)이 수승(殊勝)한 삶이되길 발원(發願)해 본다. 설문 용수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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