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 냄비의 종소리와 모금 상황을 알려주는 대형 온도계가 나타나면 연말 분위기가 고조된다. 불우이웃돕기 모금활동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충족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한편으로, 기본적 욕구에는 문화생활을 하고 싶은 것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문화예술이 정신적인 배고픔을 채워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데 중요한 것 이라는데 동의한다면 말이다. 오로지 창작에만 전념하는 예술가들도 지원이 필요한 불우이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예술성으로만 평가받고 싶어 할 뿐 대가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우리들은 예술가의 빈곤함을 당연시한 건 아닐까? 필자가 아는 젊은 작가에게 어쩌다 아크릴물감을 사주면 고마워하지만 계속 물감이 부족할 거라는 내색은 결코 하지 않는다. 무대공연에 자신의 주머니를 흔쾌히 털면서도 도움의 손을 내미는 일에는 너무나 힘들어하는 무용가도 있다. 그들이 예술의 열정과 혼을 놓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겨울철 김장 담기나 연탄배달 봉사활동은 내년에도 또 후년에도 이어져야 한다. 그런 도움은 십시일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며 굳이 대기업이 나서서 생색낼 일이 아니다. 진중권 교수는 "문화예술에 대한 기부는 하수구에 돈을 뭉텅이로 쏟아 붓듯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대기업의 기부는 일반인이 할 수없는 문화예술에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거창하게 메디치 가문을 들먹이지 않아도 금호아시아나의 영재음악인 발굴에 대기업의 기부가 없었으면 그토록 훌륭한 연주자들이 나올 수 있었을지 생각해보면 예술에 대한 기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기업이 지원활동의 결과를 예측하고 시작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세계를 빛내는 연주자들의 활동으로 한국예술 수준을 높이는데 크게 공헌했다고 볼 수 있다. 기업이 예술가들에게 돈을 퍼붓는 것만으로 이미지를 높이는데 기여하게 될지 모른다.

기부금을 낸 사람들은 그 용처에 대해 묻지 않는다. 그저 좋은 곳에 잘 전달될 것으로만 기대하며 뿌듯해 할 것 같다. 예술가를 지원하는 일과 어려운 이웃을 돕는 행위는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는 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즉, 문화예술에 대한 기부도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마음이면 된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기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창작에 목마른 훌륭한 예술가들을 지원해 한국문화를 높일 수 있는 예술 활동에도 통 큰 기부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술에 대한 기부행위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국가적 부를 창출하는 먹거리가 탄생할 수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현재 각 예술극장에서 열리는 오페라와 뮤지컬을 보자. 서양의 고전을 각색하거나 기존의 히트한 작품들을 다르게 연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과거 엄청난 지원의 결과로 만들어진 서양예술의 열매를 그 후손들이 따먹고 있는 것이다. 예술이 산업인 시대가 도래했다. 창작예술작품이 한국의 미래에 먹거리를 창출하는 주역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훌륭한 예술작품이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갈 길이 멀지만….

필자는 지난해 세계지능형로봇총회에 참석한 많은 외국과학자가 대전의 춤을 보고 매료돼 한국예술의 높은 수준에 놀랐다는 이메일을 주최 측에 보내온 사례를 자주 떠올리곤 한다. 그 중의 한 해외과학자에게 그 때 봤던 한국의 춤을 보여주러 당신나라에 가겠다고 하면 어떤 상황으로 확대될까 하는 망상에도 빠진다. 세계에 아직 덜 알려진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우리가 가진 것 들로 우리의 능력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선진국의 위상에 부응하려면 한국에는 더 깊이 있고 수준 높은 예술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문화예술로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동시에 높은 수준을 갖추어 한국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그러기 위해 한국예술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역량 있는 예술가를 키워야 하고 특히 대전예술의 역량을 높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대전의 예술이 해외에서 먼저 알려지면 한국의 예술도 같이 발전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불우이웃을 돕는 마음으로 예술가들에게 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부금에 조건을 달지 않고 그저 필요한데 쓰일 거라고 확신하는 것처럼 예술가들도 좋은 작품을 만들겠거니 무조건 믿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창작 의욕이 넘치는 예술가에게서 세계적인 작품이, 우리 미래의 먹거리가 나올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박숙영 문화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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