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름을 판단해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비판(批判)과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들어가며 나쁘게 말하는 비난(非難)은 분명히 다르다. 굳이 사전적 의미가 아니더라도 비판은 긍정적으로 사용되며 비난은 부정적이다. 초등학생도 다 아는 이 두 단어를 소위 사회지도층이라는 정치권에선 왜 구분하지 못하는 걸까.

우여곡절 끝에 내년도 예산안이 6일 국회를 통과했다. 어느 때보다 협치를 강조했던 20대 국회지만, 여야간 갈등을 좀처럼 좁히지 못해 국회 선진화법이 도입된 후 최초로 법정시한을 넘겨 예산안을 처리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선 자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여당과 제1야당의 수장들이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자 원색적인 비난전을 진두지휘하는 모양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합의 정신을 처참하게 무너뜨리고, 고성으로 어깃장을 놓는 게 협치를 요구하는 한국당의 참모습이냐. 한국당은 `좌파예산` 운운하며 무책임한 선동질에 주력했다"고 맹비난했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도 국민의당을 향해 "야당인척 하면서 뒷거래로 지역예산을 챙기고 난 뒤 막판에 여당과 같은 편이 됐다"고 비난했으며, 통과된 예산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예산`으로 규정하고 "아주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되고, 일자리나 경제성장, 국민복지에 아주 어려운 환경을 초래할 것"이라고 악담을 쏟아냈다.

물론 이들은 국민들이 제대로 알아야 할 것 들을 지적했으며, 옳고 그름을 판단해 객관적인 잘못만을 지적하는 소위 `합리적 비판`이라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평소에도 과격한 단어선택으로 자주 구설에 올랐으며, 이번 발언도 그 연장선에 있을 뿐이다. 특히 당장 주요 법안처리를 논의해야 하고, 개헌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여야의 수장들이 이처럼 상대의 감정선까지 자극하는 이유는 뭘까. 한가지는 분명하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은 단시일내에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어려운 반면, 원색적인 비난은 시시비비를 떠나 관심의 대상이 된다. 반대 측에게는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겠지만, 지지층에겐 원초적 희열을 느끼게 해 결집력을 높이는 단초가 된다. 나라가 어디로 갈지언정 정치적으로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식이다.

일반 대중들이 자극적인 `비난`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무디게 된 것 또한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입에 올리기 민망할 수준의 여의도발 `막말`에 익숙해진 국민들로선 이제 웬만한 비난에는 눈 하나 꿈쩍 않게 됐다. 심지어 일부 정치인들은 시민들도 비난행렬에 동참하도록 동참을 유도하거나, 감성을 자극한다. 민주주의의 장으로 이끌고 가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국민을 부추겨 비난 공화국을 만드는 셈이다.

적폐청산을 향한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핵심 피의자들이 구속영장 기각으로 풀려나고, 구속된 피의자들도 구속적부심으로 석방되는 일이 이어지자 한 여당 의원은 자신의 SNS에 슬쩍 글을 올렸다. 핵심 피의자를 풀어준 판사와 우병우 전 정무수석간 학연 등을 소개한 것이다. 시민들은 이를 근거로 해당 판사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으며, 다양한 억측도 생성해냈다. 일파만파로 파문이 확산되자 이명수 대법원장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이번 정부 들어 임명된 대법원장이, 그것도 법원내 대표적인 진보성향 법관으로 꼽혔던 그가 공개석상에서 "재판결과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헌법 정신과 법치주의에 어긋나는 매우 걱정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비판으로 포장된 비난이 판치는 사회가 되면서 건전한 비판은 설 자리를 잃게 될 위기에 직면한 형국이다. 지난 달 말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한 강연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을 향해 "이견 자체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지지운동으로는 정부를 못 지킨다"고 말했다. 이견이나 건전한 비판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한 것임에도 지지자들로부터 `적폐세력`, `꼰대`라며 호된 뭇매를 맞아야만 했다.

정치권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근거 없는 비난은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정치권에도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이다. 여야를 떠나 행정부에 대한 건전한 비판은 의회의 기본적 책무 아니겠는가. 송충원 서울지사 부국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