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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분노와 보천욕일(補天浴日)

2017-10-29기사 편집 2017-10-29 12:4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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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있는 남편에게 짙은 향수가 뿌려진 아내의 손 편지가 날아든다. "위층을 한 음악가에게 세를 놓았는데, 그 남자는 가끔 거실로 내려와 바흐를 연주해줘요."(신영복의 '담론') 이러한 상황에서 감옥에 있는 남편의 심경을 헤아려본다. 예술가의 위선만 집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약하다. 이후 그 남편의 수형생활은 아내의 변심가능성에 대한 불안으로 더욱 힘겨웠을 것이다. 그리고 편지가 뜸해지면 불안은 분노로 바뀔지도 모른다. 분노는 마음에 이는 거센 바람이다. 그러한 바람을 잠재우지 못하면 분노는 공격적으로 돌변해 살인이나 전쟁으로 이어지는 파괴적인 에너지가 되기도 하지만, 잘만 다스리면 창조와 변혁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사회운동에 가담했다는 죄명으로 사형언도를 받고, 집행 순간에 사면된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여러 해 동안 옥살이와 유형생활을 한다. 그러는 동안 그의 분노의 에너지는 창조적 열정으로 승화되어 '죄와 벌'을 낳았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를 통해 '고리대금업이라는 사회악 해소를 위해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게 한다'는 설정이 끔찍하지만, 범국가적으로는 사회적 유토피아를 가져왔다고 비평가들은 평가한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카라마조프가네 형제들'에서는 세 주인공에게 감성, 이성, 신성을 부여하여 아슬아슬하게 친부살해의 가능성까지 열어두니, 인간에게 연기처럼 피어나는 분노의 에너지는 쉽게 소멸되지는 않는 듯하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분노를 마음으로 다스리고 굴욕을 감내하면서까지 추구할 만한 고귀한 이상은 얼마든지 있다. 전쟁에서 패한 이릉 장군을 변호함으로써 사형위기에 처했던 사마천이 품은 바가 그것이다. 중국의 고대 왕조사인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남자로서 치욕스런 궁형을 받아들인 결과야말로 사마천이 고귀한 이상을 추구한 값진 성과가 아니겠는가. 오늘날 사가들은 그를 중국의 위대한 역사가로 평가하지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한 이로 보지 않는다. 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 억울하게 맞닥뜨린 상황 앞에 분노가 치미는 현상은 건강한 마음의 표출이다. 억울한 옥살로 20년을 보낸 신영복도 분노의 에너지가 넘치는 감옥이라는 변방을 창조공간으로 활용한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담론'에 이르기까지 그의 글은 떫은 기가 없고 달콤한 맛이 난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그가 있는 곳과 바깥세상이 뒤 바뀐 듯 착각이 들 정도다. 감옥생활이 달콤하고 편안할 리 없겠지만 '어째서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일깨우는 방식은 다시금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인간이해에 있어서 감옥은 대학이다'라는 표현에서는 예수와 부처의 사랑과 자비를 실천궁행하는 모습처럼 여겨진다. 친구의 전사 소식을 듣고 '분노는 꿀보다 달콤하다'고 절규했던, 아킬레우스! 친구와 전투에 함께하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컸지만,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던 상관에 대한 반감도 있었다. 그의 분노는 전투에 참여할 명분을 얻었고, 적의 기세를 꺾어 종국에는 9년간의 지리멸렬한 트로이전쟁에서 그리스 군이 승리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했지만, 개인적 복수심이 크게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분노의 에너지가 개인을 넘어 위기에 처한 국가를 바로 세운 예는 우리 역사에도 있다.

400여 년 전 임진왜란에서 정유재란에 이르는 전쟁은 실상 이순신 장군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7년간의 전쟁을 끝냈으니 장군의 죽음은 위대한 살신성인이다. 이순신이 싸워야 했던 적은 왜적만이 아니라 조선 조정에도 있었다. 이순신의 능력을 시샘하는 자들로 인해 졸지에 계급장이 떼어지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보통 인간이라면 나올 법한 분노를 오로지 나라와 백성의 안위만을 위해 삭였다. 그것을 감지한 백성들이 이순신 주위로 몰려들었고, 그들은 목숨을 부지했다. 지원병을 끌고 왔던 어느 명나라 장수는 떠나가면서 이순신을 '보천욕일' 즉, '찢어진 하늘을 바느질하고 뿌연 태양을 깨끗이 닦았노라'고 평가했다. 이순신 장군이 세계사적 인물임을 다시금 입증하는 말이다. 이순신 장군의 기개와 정신은 400년 이상 이어오고 있다.

헌정질서를 유린한 지도자와 그 부역자들에 대항해 횃불처럼 들고 일어났던 '2017 촛불시민혁명'의 승리는 분노를 승화시켜 나라와 백성을 구원한 이순신 장군의 보천욕일 정신의 연장선이다. 정의로운 분노의 에너지는 개인은 물론 위기에 처한 국가를 바로세울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무엇에 어떻게 분노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다.

<맹주완 아산문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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