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취임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강력한 미국의 재건을 정치 공약으로 제시했다. 냉전이 끝나가면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흔들릴 것을 염려해서다. 레이건이 미국의 국제적 위치에 대해 고민을 한 것이다. 이때부터 지켜야 할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한 미국은 정치, 경제, 문화, 복지 전반에 걸쳐 보수주의를 지향했다. 이때 새시대 우파란 뜻의 `뉴라이트`란 용어가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자유주의연대가 출범하면서 뉴라이트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그 후 자유주의연대를 중심으로 한 세력과 활동에 대해 모두 뉴라이트라고 불렀다.

한국의 뉴라이트는 기존의 보수가 지나치게 수구화된 것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위해 새로운 정풍운동 차원에서 등장했다. 2005년 창립된 뉴라이트전국연합이 대표격이다. 이들은 이념적 편향성과 권력과의 유착 경향을 보였다. 한때 이승만 대통령 동상을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 있는 광화문에 세우겠다고 고집을 부려 비판을 받기도 했다. 독재 정권 찬양과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주장도 서슴없이 폈다. 뉴라이트 반대론자들은 뉴라이트가 일본 신식민주의 사관을 가진 집단이라고 몰아붙였다. 2007년부터 파워조직 영향력 신뢰도 평가에서 하위권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국민적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 다시 득세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가 막을 내리면서 존재감이 소멸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박근혜 정부 때 되레 더 득세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뉴라이트는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최근 신설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의 뉴라이트 역사관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도 독재를 찬양하는 등 극우성향 때문이다. 박 후보자는 새마을운동을 신분계층 제도의 타파로 평가하고, 유신이 조국 근대화의 열망으로 단행됐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선 촛불 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가 촛불시민들이 적폐로 지목한 가치관을 가진 인사를 기용하려 한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청와대가 박 후보자의 뉴라이트 역사관을 생활보수란 말로 엄호에 나섰지만 반발이 크다. 그가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며 자신의 역사관에 대해 해명했지만 오히려 (해명을)하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됐다. 국무위원 후보자의 역사 무지론이 또 다른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곽상훈 취재1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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