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당시 미 공군은 전투기의 격추를 줄이기 위해, 전투에서 생환한 전투기에서 적의 공격에 의한 외부 손상을 조사했다. 비행에서 돌아온 전투기의 외상은 날개와 꼬리부분에 집중돼 있었다. 이에 당연히 그 부분에 추가 장갑을 설치하려했는데, 이를 조사한 똑똑한 연구원이 엔진과 조종석 부분을 집중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분석은 비행기의 각 부분은 적군의 총탄에 손상을 입을 확률이 비슷한데 조종석과 엔진부분에 흔적이 없다는 것은 그 부분에 손상을 받으면 치명타를 입고 돌아오지 못했다는 증거라는 것이었다. 만약 이 훌륭한 연구원이 아니었으면 편향된 데이터 분석으로 쓸데없는 곳에 두꺼운 갑판을 덧 댈 뻔했던 사건을 일반화시켜 `생존자 편향의 오류(survivorship bias)`라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편향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수많은 강연과 세미나에서는 성공한 이들의 사례설명이 있다. 그들의 성공사례는 비슷비슷하다. 이것 역시 실패한 사람들의 사례는 누락돼 있어 이 또한 오류를 갖고 있다. 성공한 이유도 필요하나 실패한 원인이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우위의 시각`에 의한 편향이다. 이렇듯 우리의 편향된 생각이나 편견은 각자의 자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는 맹점이 있다.
`편견`의 사전적 의미는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며 비슷한 단어 `편향` 역시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뜻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이런 편견과 편향이 무수히 많다. 이런 편견을 갖고 있다 해서 문제 될 것은 없으나 이것으로 인한 타인 혹은 사회에 해를 끼친다면 문제인 것이다. 인간사에서의 잘못된 편견은 한 사람을 무참히 짓밟을 수 있고 매장시킬 수 있으며, 우리 사회에서의 좌편향 우편향의 극한 대립은 국가를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 단순히 반대편에 있다고 해서 완전배제로 무시한다면 이는 범죄다. 이런 편향적 사고는 개인의 자유이지만 이것에 뒷받침 돼야 하는 것은 다른 쪽, 즉 반대편에 대한 이해와 이에 따른 지식의 습득이 필수다. 자신의 논리를 편향된 증거나 설명으로만 고집한다면 `편견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편향이나 편견을 깨는 첫걸음은 그것에 대한 이해다. 가장 올바른 것은 바로 직접 경험이라 하겠다. 사람은 겪어 봐야 하며, 일은 해봐야 하고, 이념이라면 그 이념을 공부해야 알 수 있다. 경제는 일을 직접해 경제활동을 해보고 자신의 노동력으로 돈을 벌어 봐야 한다. 경제를 논하는 이가 평생 자신이 직업을 갖지 않았다면 편견이나 편향을 깰 수 없다. 극히 편향된 이들은 자신과 반대의 의견을 내는 이들을 경멸하고 존중하지 않으며 그와 관계 있는 이들 조차 적으로 규정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만약 이런 이들에게 권력을 쥘 기회가 온다면 반대파를 무참히 짓밟는 대규모 소모성 전투로 인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하고 만약 이들이 승리한다면 승자독식 하는 게 필연이다. 이런 승자독식은 수많은 부작용을 낳게 되고 엄청난 세수낭비를 동반하게 된다. 이것은 바로 `승자의 저주`를 불러오며 국민을 비탄에 몰아넣을 수 있다. 강명식 푸른요양병원장·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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