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328쪽 / 1만4800원

따분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림 한 점 없이 빼곡히 쓰여진 글들은 하품을 불렀다. 만화나 영화가 좋았다. 어느 날, 선생님은 독후감을 숙제로 내줬다. 아버지의 책장을 서성이다 책 한권을 꺼내 들었다. 책도 얇아 보였고 여백도 컸다. 그 자리에 앉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였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당시 읽었던 이 문구는 삶의 한 켠에 자리 잡았다. 유년시절, 뜻밖의 독서는 아직도 잔잔한 울림을 준다.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 유시민의 책이 다시 나왔다. 그의 청춘을 대변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고민에 책 `청춘의 독서`로 답한다. 공직생활을 뒤로 하고 인생의 중턱에 이르렀을 때, 유시민은 청춘을 함께했던 책들을 다시 꺼내 들었다. 삶의 이정표이자 오래된 지도를 다시 펼친 것이다.

유시민이 꼽은 14권의 고전은 모두 당시 사회를 뒤집고 시대를 흔들었던 위험하면서도 위대한 책들이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뜨거운 청춘을 보냈던 유시민이라는 사람의 삶에 새겨진 깊고 뚜렷한 흔적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우연히 발견한 `죄와 벌`, 지하 서클 선배들이 던져놓고 갔던 `공산당 선언`, 그가 세상을 전율시켰던 항소이유서에 영감을 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故(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까지…. 책들은 긴 세월 축적된 역사 그 자체이자 누구보다 뜨거웠던 청년 유시민을 만들었다.

책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청춘들이 끊임없이 다시 읽을 책들에 대한 이야기다. 영웅이 돼 세상을 구하고 싶다는 유혹,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한 고뇌, 권력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것을 알면서도 탐하는 인간의 욕망 등 인류가 존속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유시민은 이번 책에서 오래된 지도를 꺼내 들고 자신의 청춘으로 돌아간다. 30여 년 전 읽었을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 들에 눈길이 머문다. `두냐`라는 평범한 여인의 가치, 혁명론자 맹자에게서 보수주의자의 면모를 발견하거나 `진화론` 속 이타적 인간의 가능성 등 지난날 모르고 지나쳤던 삶의 결과 복잡함을 깨닫는다.

유시민은 이 책을 갓 대학에 들어간 딸에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유시민의 청춘이 스민 책 14권은 앞서 살다 간 이들의 고민과 답이 숨어 있다. 아마 그의 청춘을 흔들었던 책들이, 그의 딸에게도 영향을 미치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더불어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도 그가 느꼈던 깊은 울림을 전하고 싶었을 테다. 김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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