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넥토그래피 혁명

`지리적 환경이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말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격언 가운데 하나이다. 그만큼 지리적 환경은 지금까지 인류 문명과 역사, 그리고 국가의 흥망을 결정지어 온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세계적인 국제관계 및 세계전략 전문가로 손꼽히는 파라그 카나는 `커넥토그래피 혁명`을 통해 불변의 진리처럼 여겨지는 이 격언이 더 이상은 유효하지 않다는 도발적인 선언을 한다.

그는 지금까지 인류와 국가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지리적 제약이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변화가 현재 진행 중이라고 주장한다. 또 지리적 조건을 기반으로 구성돼 온 군사·외교·국제관계 역시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파라그 카나가 미래의 인류 문명과 역사를 움직일 새로운 원동력으로 제시하는 이 힘의 정체는 바로 `연결성(connectivity)`이다. 과거 제국주의는 영토 정복, 식민지 확장이 최우선관심사였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더 이상 21세기에 대처할 수 없다고 말한다.

파라그 카나는 세계를 분석하면서 많은 최신 데이터와 전 세계의 생생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논의의 중심에는 항상 지도가 놓여 있다. 이는 그가 책 제목으로 커넥트(connect)와 지오그래피(Geography)를 합성한 `커넥토그래피(Connectography)`라는 신조어를 내세운 이유기도 하다. 나아가 그의 주장이 단순히 경제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인류 문명을 관통하는 역사적이고 공간적 사유를 담아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파라그 카나가 꼽는 연결성의 장점은 한마디로 `불가역적 혹은 돌이킬 수 없는`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표현은 연결성의 특징을 잘 나타내준다. 한번 연결된 세계는 돌이킬 수 없다. BTC파이프라인은 앙숙인 시아파 이슬람 국가인 아제르바이잔과 그리스 정교 국가인 조지아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결합시켰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듯이 한번 연결된다면 그 연결이 가져다 주는 이익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파라그 카나는 이러한 장점이야말로 `연결 혁명`이 앞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가장 합리적인 전략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파라그 카나가 말하는 연결성의 관점은, 현재 세계를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훨씬 현실적인 분석틀을 제공해준다. 지금까지의 국제관계와 역학관계의 많은 부분이 변하고 정체성이 바뀌게 되고, 이에 따라 접근방법과 해결책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다.

과거에 지리적 조건은 바꿀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21세기는 이 `운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시베리아 일대의 강줄기를 바꿔 에너지 흐름을 바꾸려는 중국의 시도, 척박한 사막의 도시를 아프리카와 유럽, 아시아를 잇는 허브도시로 바꾸면서 세계적 도시로 발돋움한 두바이처럼 더 이상 지리적 조건과 국경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천형이 아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운명을 개척할 수 있으며, 그 주인공은 바로 공급망과 도시가 될 것이다.박영문 기자

파라그 카나 지음·고영태 옮김/ 사회평론/ 624쪽/ 2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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