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주 서울, 부산, 대구에서 추모 집회가 열렸다. 추모집회가 갖는 사회적 의미와 파장에 비해서, 언론은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젠더 쟁점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함으로써 묻힌 것이다.

여대에서 강의를 하기 때문에 나는 20대 여성들의 사고 변화를 가깝게 느낄 수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강의하면, 관심이 높지 않았다. 그러나 작년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여학생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기대 이상으로 높아졌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20대 여성들은 강남역 사건을 조현병 환자의 우발적 살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살인사건으로 인식한다. 그동안 진행되어왔던 여성 혐오가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표출되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이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젠더 갈등은 2010년대 초반부터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여성 혐오로부터 시작되었다. 여성 혐오는 여성에 대한 공격과 폭력으로 성차별, 여성에 대한 부정, 성적 대상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여성 혐오는 오랫동안 가부장적 체제 내에서 형성된 것이기는 하지만, 몇 해 전부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명 일베)나 디시인사이드 등은 무차별적으로 여성을 공격해왔다. 이들은 `김치녀`나 `보슬아치`(여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단어와 벼슬아치의 합성어) 같은 용어를 사용해서 여성 전체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냈다. 보슬아치는 여성들이 자신의 성을 이용해서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뜻이다.

2015년 인터넷 핵심 젠더 키워드는 `메갈리아`였다. 메갈리아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은 자신들을 메갈리안이라고 부르는데 대체로 20-30대다. 매갈리아는 남성 혐오로 맞대응했다. 메갈리아는 한남충, 씹치남 같은 용어를 사용해서 남성들을 공격했다. 메갈리아에서 파생된 `워마드`는 더 강력하게 남성을 혐오하고 있다.

나는 일베의 여성 혐오나 워마드의 남성 혐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나의 관심은 확산되고 있는 젠더 갈등의 중요한 원인은 `분배 갈등`에 기인한다는데 있다. 이것은 젠더 갈등이 취업 문제와 결혼시장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30대 초반 청년들은 취업 시장과 결혼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여성 혐오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던 2010년대 초반 처음으로 20대 여성 취업률이 20대 남성 취업률을 앞질렀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20대 남성 취업률은 20대 여성 취업률보다 10% 이상 높았다. 취업 시장은 10년 사이 바뀌었다. 20대 남성 취업률이 떨어진 만큼 20대 여성 취업률은 올라갔다.

결혼이나 연애시장도 급변했다. 생물학적 성비를 보면, 1990년 출생성비는 116.5이고 1995년 출생성비는 113.2이다. 여성 100명당 남성 116.5명과 113.2명이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출생성비는 이전과 이후 시기에 비해 높은 편이다. 2000년 이후 출생성비 불균형은 낮아지고 있는 추세지만, 현재 20대 남성들은 결혼하고 싶어도 최소 10% 이상은 짝을 구할 수 없다.

결혼에 대해서 부정적 태도를 갖고 있는 미혼 여성의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2015년 한 조사에 따르면, 결혼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생각하는 미혼여성은 58.1%나 된다. 이 수치는 2009년 34.6%에 비해서 급속히 증가한 것이다. 미혼 여성들의 결혼관이 너무 빠르게 변화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이나 가치관의 변화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것에 비하면, 이와 같은 태도변화는 놀라운 것이다.

강남역 추모집회는 안타깝게 희생된 한 여성의 추모를 넘어서 있다. 그것은 젠더 갈등의 폭발적 잠재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년 5월 중순 이후 젠더 갈등이 사회적으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국정농단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젠더 쟁점은 잠시 묻혔을 뿐이다. 젠더 갈등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는 분배 갈등이라는 점에서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가 청년세대의 취업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 갈등은 계속 증폭될 것이다.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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