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외환위기 이후 증가하기 시작해 최근 매우 심각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2016년 말 총규모는 1344조원으로 국내총소득의 82.1%, 가계 가처분소득의 153.6%에 달했다. 이러한 부채들은 다수가 변동금리와 일시상환 방식으로 되어 있어서, 금리 인상 등 금융시장의 변화에 상당히 취약한 상태이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매년 대응책을 내놓고는 있으나, 가계부채는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해 왔다.

가계부채는 적절한 수준 이하로 유지되면,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부채조달을 통해 미래의 소득을 미리 앞당겨 투자하거나 지출함으로 개인의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킬 수도 있고, 경제전체적으로는 소비를 진작시켜 경제에 활력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가계부채가 적절한 수준을 넘어서면, 개인적으로는 상환을 못하거나 상환부담 때문에 투자나 소비를 줄이도록 만들며, 경제전체적으로는 금융부실로 인한 금융 취약성 증대와 총수요 부진으로 인한 경기침체를 낳을 수도 있다.

우리의 가계부채는 현재 그 규모가 크기는 하지만 차주 구성 등을 고려할 때 크게 염려할 상황은 아니라는 주장도 많다. 그러나 가계부채 총액의 29.1%가 실물자산의 처분없이는 단기간에 부채를 상환할 수 없는 한계가구의 부채이다. 또한 통계청의 조사에 의하면 부채보유 가구의 20.4%는 원리금상환이 생계에 크게 부담이 된다고 답했으며, 74.5%의 가구가 원리금 부담 때문에 투자와 소비를 줄이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그동안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지금까지 정부는 가계부채의 증가속도 완화, 부채의 질적 구조 개선, 서민과 실수요자에 대한 자금공급 유지, 한계차주 및 자영업자 지원과 관리에 초점을 맞춰 대책을 펼쳐왔다. 그러나 고정금리와 분할상환 비중을 늘리는 질적 구조 개선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보였으나, 다른 것들에는 별다른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문제는 그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현재와 같은 사후 대책만으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정부의 여러 대책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가 계속 증가하는 원인은 다음의 세 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소득수준의 저하와 주거비 상승에 따른 생계비의 보충 수요 증가이다. 둘째는 투기적 목적의 주택 및 토지 구입을 위한 자금수요 증가이다. 셋째는 조기퇴직이나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자영업자의 사업자금 수요증가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극심한 소득격차 속에서 저소득층의 소득이 정체상태에 있거나 감소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지난해의 경우 하위 소득계층인 1, 2분위의 소득은 각각 5.6%, 0.8%나 감소했다. 이에 반해 전세 임대료는 3.2% 상승했다. 작년 가계부채 조달 중 생활비·부채상환·전월세보증금 마련이 전체 차입의 15.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이의 결과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는 지난 정부 내내 부동산 활성화를 경기부양 정책의 하나로 이용했다. 지난 해 거주 및 부동산 투자를 위한 차입 비중은 59.1%에 달했으며, 집없는 가구보다 자가 가구의 부채조달이 금액이나 비율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 결국 부동산 활성화 정책이 부동산 투기 목적의 부채 조달을 지속적으로 증대시켜 온 것이다. 또한 조기퇴직과 실업증가가 높은 자영업 비중을 형성하고 있는 바, 이 자영업자의 사업자금 조달도 상당하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근본적으로 대부분이 생활비 부족 때문이거나 투기적 목적의 자금수요 때문에 증가해왔다. 따라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고 과다보유자에 대한 중과세를 통해 투기를 억제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저소득층에게 충분한 일자리와 적절한 소득증가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가계부채 문제는 결국 해결할 수 없다. 한계차주에 대한 지원과 관리가 당장은 필수 불가결한 대책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소득증가와 투기억제 만이 가계부채를 적절한 수준 이하로 유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조복현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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