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라기밥을 먹었나?"라는 속담이 있다. 쌀이 부서져서 반 토막이 난 싸라기처럼 말을 반말 투로 하는 사람을 빈정거리는 말이다. 이처럼 싸라기는 언중 사이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쌀의 검사규격을 정해 놓은 관련 규정에서는 병충해 등의 피해를 입지 않고 쌀의 형태를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는 알갱이를 `완전립`이라 부르고 완전립 평균길이의 4분의 3 미만인 조각을 싸라기라고 한다.

밥을 할 때 물이 뜨거워져서 쌀에 들어있는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익히는 과정을 `호화(糊化)`라고 하는데 싸라기는 호화 과정에서 그 성분이 흘러나와 물과 섞이면서 곤죽이 되어버린다. 이른바 `떡밥`이 되어 먹기가 고약해진다. 싸라기가 밥맛을 좌우하는 모든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쌀의 품질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다. 싸라기와 함께 피해립(被害粒)·분상질립(粉狀質粒)·열손립(熱損粒) 등이 쌀의 품위를 결정하는데, 이들 함량비에 따라 특·상·보통·등외로 나누어 놓은 것이 쌀의 등급이다. 이밖에도 생산연도, 도정일자, 단백질 함량 등이 쌀의 품질을 좌우하는 요인이다.

정부에서는 판매되는 모든 쌀에 위의 내용과 함께 품목, 무게, 생산·가공·판매자, 원산지, 품종 등을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양곡표시제라 한다. 쌀 이외에 보리, 콩, 감자, 고구마 등 다른 양곡도 양곡표시제의 대상이며 종류에 따라 표시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양곡에 대한 정확한 품질정보 제공으로 품질향상을 유도하고 소비자의 알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200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 넘어 대부분 표시사항이 잘 정착된데 비하여 쌀의 등급은 특·상·보통·등외로 표시를 하게 해놓고도 검사를 하지 않았을 때는 미검사로 표시할 수 있게 하여 유통되는 쌀의 미검사 표시비율이 74%에 이르는 등 양곡표시제의 취지가 훼손되고 소비자의 알권리가 침해되어 왔다. 그동안 등급표시의 문제점은 꾸준히 제기되었고 정부에서는 쌀 등급 중 미검사 항목을 삭제한 관련 법규를 2017년 10월 14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이로써 등급표시율이 높아져 양곡표시제의 본 취지에 맞게 운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계 소비자운동의 선구자인 랄프 네이더는 깨어 있는 소비자는 공적 시민으로서 의무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비자가 쌀의 품질정보를 꼼꼼히 따지고 합리적 문제제기를 지속한다면 쌀의 품질도 지금보다 훨씬 좋아지리라 믿는다. 모든 상품의 질은 생산자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기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남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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