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전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한국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었다. 바로 `변호인`이란 영화이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주인공의 절규가 많은 국민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렇다. 현재와 같은 대의민주주의 시대에서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너무나도 상식적인 말이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 또한 슬픈 현실이다. 즉, 주인공의 이와 같은 짧은 외침에 대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이를 삶에서 체감하며 스스로의 주권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는지. 이에 대해서는 아마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회의적일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회의적인 현실에 대해서 장애인만큼 회의적인 집단이 없다. 왜냐하면 비장애인의 경우 대의민주주의 시대에 최소한 선거에 대한 접근권은 보장받기 때문이다. 즉, 선거의 4대 원칙인 보통선거, 평등선거, 직접선거 및 비밀선거 중 비장애인의 경우 보통선거 및 평등선거의 원칙뿐만 아니라 직접선거와 비밀선거의 원칙을 침해받지 않는다.

하지만 장애인의 경우 이와 같은 선거의 4대 원칙마저도 현실에서는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접근권의 제한, 보조수단의 제한 등으로 인해 현실에서는 직접선거와 비밀선거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례로 한 장애인단체 조사에 의하면, 지난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장애인의 투표 참여는 86.9%로 전국투표율보다 훨씬 높게 나타날 정도로 장애인의 정치참여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다. 하지만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유권자 중 약 25%가 투표소의 접근성과 이동지원 수단이 없어 정당한 권리행사를 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현실에서 장애인의 선거권은 일정 부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지난 2012년에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장애인선거권 모니터링을 전국적으로 실시한 적이 있는 데, 대전광역시의 경우 투표소 접근성, 시각장애인을 위한 투표안내문 제공, 웹사이트 정보제공 등과 같은 장애인의 선거권을 보장함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들이 전국평균을 대부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휠체어 사용자가 투표 가능한 기표대가 설치된 비율이 50%, 점자형·묵자형 투표안내문을 함께 제공한 비율이 60%, 점자형·묵자형 투표안내문 내용이 동일한 비율이 20%, 시각장애인이 요청하는 경우 확대문자로 된 안내문을 제공하는 비율이 2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대전광역시의 경우 다른 시·도에 비해 장애인의 선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반 환경이 상대적으로 양호함에도 불구하고 개선해야 할 사항들 또한 많이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선거를 대의민주주의의 꽃이라 표현한다. 즉, 선거를 통해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대의민주주의의 대명제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인의 경우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에서 아직까지도 선거권이 침해받는 환경에 직면해 있다. 19대 대통령 선거가 불과 며칠 남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대전시는 대선 일까지 남은 기간 동안 대전시 관내 모든 투표소에 대한 철저한 관리 및 진행사항 점검을 통해 최소한 이번 19대 대통령선거에서 만큼은 접근성이 제한돼서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는 대전시 장애인이 한 명도 없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뿐만 아니라 이번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의무도 있다. 위의 장애인단체 조사에 의하면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유권자 중 43%가 지지하는 후보자가 부재에 따른 정치적 무관심으로 투표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장애계는 매우 중요한 현안들에 직면해 있다. 장애등급제 폐지, 장애인최저임금제 도입, 장애인연금 확대, 활동지원서비스 개선 등 매우 중요한 현안들을 지혜롭게 해결해나가야 할 시점에 있다. 따라서 대선후보들이 제시하는 공약들 중 장애인정책과 관련된 공약들이 위에서 제시하고 있는 현안을 얼마나 잘 해결할 수 있는 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 이번 19대 대선에서는 대전시 장애인이 한 명도 빠짐 없이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필자는 대전시가 전국에서 모범적인 장애친화도시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대전시는 이번 19대 대선에서 대전시 장애인의 선거권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함과 동시에 대전시 장애인당사자들은 면밀한 공약분석을 토대로 소중한 한 표를 반드시 행사하기를 기대한다. 김동기 목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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