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부터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인터뷰를 하게 되면 마지막 질문은 늘 대통령선거에 대한 물음이었다. 물론 그의 대답도 한결 같았다. "꾸준히 공부하고 토론하며 준비 중이다. 출마 여부와 시점은 아무도 모른다. 시대가 요구한다면 언제든 기꺼이 응할 것이다." 항상 궁금했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했고, 어떠한 비전을 보여줄지, 그리고 국민들은 그를 어떻게 평가할지 말이다.

지난 3일 민주당 수도권 경선을 끝으로 그는 이번 장미대선 정국에서 퇴장했다. 여러 평가가 있지만 대체로 긍정적 반응이 우세하다. 문재인 대세론에 위협을 줄 정도로 단기간 내 지지율을 끌어올렸고, 차기 주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만은 아니다. 유·불리를 떠나 그가 생각하는 시대정신의 가치를 끝까지 설파하고, 새로운 선거문화를 실천하는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우선 그는 원칙과 방향성을 강조하는데 주력했다. 일자리를 포함한 경제정책과 복지·노동 분야에 대한 비전을 계량화된 수치나 약속으로 제시하는 것을 꺼렸다. 대통령은 정책에 담아내야 할 철학과 원칙, 그리고 방향성에 대해 제시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구체적인 추진사항은 해당 분야 전문가와 당사자, 관료사회에서 집단적으로 머리를 맞대 만들어내야 하고, 대통령은 그에 따른 최종 판단과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충남도백으로서 경험했던 지역 현안을 전국적 의제로 접근해 문제를 푸는 `충남의 제안` 정도가 그나마 구체성을 지녔을 뿐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정당의 정책과 조직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르고 집권 후를 구상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선거캠프를 최소화하려 했다는 점이다. 실제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에게 캠프 합류보다 지지선언을 유도했으며, 각계 전문가 또는 원로들에게도 공식적인 캠프 직함을 주는 대신, 기능별 멘토단에 참여토록 양해를 구했다.

물론 그는 이 같은 원칙이 끝까지 선명하게 유지됐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경선 중반에 접어들면서 상당수 의원들이 캠프에 직접 합류하기도 했고, 일자리와 일부 경제 분야 공약과 관련해선 구체적 수치를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본적 흐름은 유지했다는 점이며, 결국 이에 동조하는 다른 유력주자들이 생기면서 가치와 원칙에 대한 토론이 눈에 띄게 늘었고, 정당중심의 정치와 선거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공감대를 넓힌 것만큼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를 주목받게 한 동시에 집중 공격을 받았던 키워드는 `대연정`이다. 핵심은 극단적인 갈등구조를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을 나누고 소통을 강화해야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소여대에 따른 불가피성은 굳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정치현실에선 진정성부터 제압당했다. 개혁 과제에 동의한다면 어떤 정치세력과도 힘을 합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적폐세력과 손을 잡겠다는 것이냐"는 선명한 공세에 묻혔다. 여소야대의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지만, 대선 후 소연정 또는 협치하면 된다는 식으로 일축됐다. 하지만 적폐세력으로 규정된 이들이 대선 이후 승자의 `협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을 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이 당시 야당으로부터 거부당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치솟던 지지율을 급락하게 했던 `선의 발언`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편이 아니라고 해도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애초의 의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다. 즉, 선의는 상대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상대방을 대하는 `경청`의 자세를 말한 것이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대연정이나 선의에 대한 그의 입장은 득표만을 고려한 선거전략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1년 전에도 자신의 SNS에 "미움과 비판, 지적, 충고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원수를 갚기 위해 평생 절치부심한 사람은 그 원수를 죽음으로 복수해도 결국 그 원수가 자신 안에 들어와 버림을 어찌 할 것인가"라고 선의를 설명했었다. 연정론 역시 준비된 원고가 아니라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자연스럽게 언급됐던 그의 평소 소신이었던 것이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그는 이번 장미대선에서 많은 것을 보여줬고, 동시에 많은 과제도 남겼다. 그의 새로운 시도가 한국 정치사에 어떻게 기록되고,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낼지 주목해 볼 일이다. 송충원 서울지사 부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