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하다 보면 가끔 당혹스런 상황을 겪게 된다. 한 번은 좁은 도로에서 천천히 간다고 젊은 운전자들이 뒤에서 경적을 울리며 욕을 바가지로 퍼붓고 달아나서 종일 기분이 언짢았던 일도 있다. 아는 사람들 중에는 운전대만 잡으면 무법자로 돌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 젊은이들과 나 사이에는 아무 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만날 일이 없으니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것이다. 관계의 단절과 산업사회의 익명성 아래 상품교환이라는 형태로 인간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한계 때문이다.

농산물의 소비에 있어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요즘은 많이 줄었지만 `속박이`라는 것이 있다. 품질이 좋은 것은 위에다 올리고 좋지 않은 것은 안에 깊숙이 박아 포장하는 것이다. 또한 택배가 일반화된 요즘은 포장을 뜯는 순간 광고와는 너무도 다른 농산물의 모습에 실망했던 경험이 누구나 한두 번쯤 있을 것이다. 관계의 단절과 익명성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이러한 사회체제의 한계 속에서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까. 답은 분명하다. `이름표`가 붙어 있는 농산물을 선택하는 것이다. 농산물의 이름표란 그 농산물을 누가 생산했는지 알 수 있는 표시이다. 이름표를 붙인 농산물에 속박이를 하는 농부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름표가 붙은 농산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정부에서는 농산물에 대한 다양한 국가인증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 친환경인증 농산물을 비롯해 GAP 인증 농산물, 지리적표시 인증 농산물, 전통식품 인증 농산물 등이 그것이다.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는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2013년 이후 친환경농산물에서 부실인증의 사례가 일부 발생해 친환경농업의 신뢰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사실이 있다. 이러한 위기를 질적 전환의 계기로 삼아 지속적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인증관리를 강화해온 결과 부실인증 및 인증기준 위반행위가 크게 감소했으며, 지난해에는 친환경농업 중에서도 환경보전 효과가 큰 유기농업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트로트 가수로 유명한 현철은 가슴에 이름표를 붙여달라 노래하고, 확실한 사랑의 도장까지 찍어달라고 했다. 농부의 땀과 열정이 담긴 확실한 사랑의 도장과 이름표가 붙어 있는 농산물. 농산물의 이름표를 통해 정직한 농부와 현명한 소비자는 직접성이 담보된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고 익명성의 폐해를 거두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기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남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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