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를 떠나 충청출신 잠룡들의 행보가 부쩍 눈에 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1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출판기념회를 갖고 사실상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평소 지론인 `동반성장`의 실현을 기치로 내세운 그는 국민의당과 소위 제3지대로부터 끊임없는 러브 콜을 받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새누리당 이인제 전 의원이 여권에서의 첫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1997년 국민신당 후보로 출마한 이후 2002년, 2007년 대선에서 연거푸 낙선한 그로서는 사실상 마지막 도전이다.

다음 바통은 안희정 충남지사가 22일 이어받는다. 대권재수생이면서도 여론조사 1위인 문재인 전 대표와 친노(친 노무현)계라는 뿌리를 함께하지만, 강경하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정확히 표현하며 상대적으로 늦은 정계활동에 비해 탄탄한 정치적 입지를 다졌고, 대중 정치력을 넓혀가고 있다.

문 전 대표와 양강구도를 형성 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언론의 조명이 가장 집중되는 인사다. 오랫동안 유력 대선주자로 회자되면서도 유엔 업무를 수행하느라, 올해 초 귀국했는데, 지난 1주일 동안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정가에서 최고의 관심을 끌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총 6번의 선거가 치러졌는데, 모두 영·호남 출신 대통령이 선출됐다. 이 기간 동안 충청권에선 김종필, 이회창, 이인제 등이 도전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영·호남에서 돌아가면서 정권을 잡았으니, 이번에는 충청에서도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게 충청대망론의 본질이고 전부라면, 결코 국민적 공감대를 받을 수 없다. 아니, 충청인 스스로가 이 같은 구태 프레임에 갇혀 하나로 뭉치는 일 따위는 결코 없을 것이라는 것은 역대 대선을 통해 이미 입증된 팩트다.

올초 대전일보가 전국 유력지방지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이 같은 기류는 여실히 나타났다. 대선 지지도 결과 전국 종합과 권역별 민심간 큰 격차를 보였으나, 충청만은 예외였다. 지역출신 대선주자가 있거나, 특정정당에 대한 연고의식이 강한 지역의 경우 전국 평균에 비해 월등히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으며, 심지어 순위까지도 뒤바뀌기 일쑤였다. 하지만 충청에선 지역출신 잠룡이라 해도 전국 평균 수준에서 오차범위내 우위를 기록했고, 순위마저 동일했다.

그럼에도 충청대망론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 시대가 충청의 독특한 기질과 정신을 간절히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사익보다 국가와 민족을 우선시하는 충(忠)은 충청정신의 기본이다. 나아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심(中)에 마음(心)을 다잡는 것 역시 충(中 + 心)이다. 지역감정과 지역패권주의, 특권과 부패,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된 영·호남 중심의 기존 정치를 개혁하려면 이 같은 충청 정신이 근본이 돼야 한다. 여소야대로 출발한 20대 국회에서 당내 지지기반이 미미한 충청 출신인사들이 각 당의 주요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욱이 `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낡은 리더십과 국정운영시스템을 새 시대에 맞게 바로잡아 국민 화합과 통합을 이뤄내려면 어느 때보다 협치가 필요하고, 중용의 가치가 제대로 발현돼야 한다.

충청대망론은 충청출신의 청와대 입성을 논하는 게 결코 아니다. 협치와 중용으로 대표되는 충청의 정신이 갈라지고 찢긴 이 나라를 바르게 세워야 한다는 게 대망론의 핵심이다. 충청에서 거론하기에 앞서 전국의 뜻있는 지식인과 지도자들이 충청대망론에 희망을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충청출신 잠룡들이 명심해야 할 부분도 이 대목이다. 물론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라 연고가 있다면 여느 후보보다 이 같은 충청 정신에 부합한 가치관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다. 하지만 연고가 있다는 것만으로 충청정신이 충만하리라는 믿음을 줄 수는 없다. 이를 증명해내고, 믿음을 주어야만 중원을 차지할 수 있고, 국가 대개조의 의무를 부여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반대라면 타 지역 출신 잠룡들보다 기대가 컸던 만큼 회초리는 더 매서워질 게 분명하다. 혹여나 전력을 다해도 표 쏠림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행보를 보이거나, 같은 이유로 정신적 기반인 충청을 부정하는 잠룡들이 있는 지 지켜볼 일이다. 송충원 서울지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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