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구현 안되는 정치·사회 분노 표출된 촛불 생각해야

안톤 슈낙(Anton Schnack)은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슬픔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그 사람과 공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타인의 고통이나 불행을 참지 못하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타인의 고통이나 불행이, 자연 재해와 같은,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사건의 결과인 경우, 우리는 그와 슬픔을 같이 하지만 분노를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불행과 고통, 슬픔의 원인이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사람들의 집단에 있을 경우 우리는 슬픔과 더불어 분노의 감정 또한 느끼게 된다. 그리고 가해자의 행위가 공정하지 않거나 또는 그 행위에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많은 경우 우리의 분노는 커질 수밖에 없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2년이 지난 아직도 동거차도에서 세월호 인양 과정을 감시하고 있는 416가족협의회 아버지들. 시위 중에 물대포를 맞고 사경에 빠진 지 1년이 흘러서 숨져간 한 농민. 대부분의 역사학자와 역사 교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하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화예술계에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기사. 국가의 시스템을 조롱하고 사익을 위해 국정을 농단하였다는 대통령 측근 일가의 작태들. 그들의 작태를 비호 조장하거나 묵인하였던 청와대 비서진과 정부 관료들. 그리고 전 국민 앞에 나와서 거짓말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우리는 슬픔과 분노를 느끼며, 이와 더불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바른 길로 나아가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게 된다.

동양 사상에서는 정치란 바름(正)을 현실 사회에서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정치를 바로 잡는 것(政者正也)"이라 한 바 있으며, 맹자(孟子)는 의(義)를 "사람이 걸어가야 할 바른 길(人之正路)"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바름을 현실 사회에서 구현하기 위해서 이들은 도덕과 정치의 통합을 이상으로 추구하였는 바, 도덕과 정치의 통합은 플라톤이 철인 군주론을 주장한 이래 서양 정치 철학에서도 이상으로 추구되어 왔다.

맹자는 "오직 어진 사람만이 높은 지위에 있어야 하는 것이니, 어질지 못하면서 높은 지위에 있으면 그 악을 여러 사람에게 전파시키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타인의 불행을 참아내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다.… 타인의 불행을 참아내지 못하는 마음으로 타인의 불행을 참아내지 못하는 정치(不忍人之政)를 행한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손바닥 위에 놓고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등의 언표를 통해 도덕과 정치의 통합의 이상 및 그 실현 방안을 잘 보여준 바 있다.

바름을 현실 사회에서 구현해야 할 정치가 잘 못 가고 있으며 그 때문에 우리 사회가 바른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슬픔과 분노는 우리 모두를 각성하게 하였다. 그 결과 타인의 불행을 참아내지 못하는 마음으로 타인의 불행을 참아내지 못하는 정치를 요구하는, 그리하여서 오히려 정치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시민의 주장은 서울의 광화문 광장을 위시한 지방 대도시의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의 함성으로 표출되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촛불을 든 젊은 부부. 쌔근쌔근 잠자는 어린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몰고 나온 어머니. 일가족이 모두 같이 나왔다는, 조금은 겸연쩍어 하지만 그래서 더욱 정이 가는 노부부. 집회와 행진이 끝난 후, 길거리에 버려진 휴지와 전단지 등을 수거하는 젊은이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수능을 치른 이틀 후 촛불을 들고 나선 고3 학생들. 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희망을 갖게 한다.

김영인 대전대 H-LAC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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