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환경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 달라 사회 테두리와 나의 사고방식 차이 비교 자신이 걸어가는 길 진지한 성찰 필요

지난 여름 서울에 일이 있어서 다녀오는 길이었다. 대전역에 내려서 용전동 숙소까지 걸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늦은 밤이라 조금 망설여졌지만, 그래도 얼마나 걸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하루 만보 이상 걷기로 한 결심도 지킬 겸 걷기로 했다. 어느 길로 갈까 잠깐 궁리를 하고, 차들이 다니는 큰길을 피해서 오래된 옛길을 따라 걸어갔다.

대전천에는 풀이 많이 자랐지만 생각보다 냄새가 나거나 벌레들이 괴롭히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야간자습을 끝낸 고등학생들이 학교에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고등학교를 보니까 지각을 하면 무척 난처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 학교 학생들은 모두 건강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면서 씩씩하게 걸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올 법한 동네 길을 걷고 있으려니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멋진 메타세콰이어 길 못지않은 플라타너스 가로수들,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것 같아 보이는 세탁소, 작은 슈퍼 앞에서 맥주 캔을 부딪히시는 몇 몇의 정겨운 동네 어르신들… 문 닫은 가게 철문들과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집을 보면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동네를 천천히 걸었다. 이렇게 오래전 분위기를 간직한 동네를 지나니 커다란 아파트 단지가 나오고 넓은 도로 위를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느리게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던 동네와 빠르게 지나가는 도시가 너무 큰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날 밤 자동차를 타고 다닐 때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대전의 옛모습을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자신의 관심사나 환경에 따라 세상을 선별적으로 바라본다. 어떤 자매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니까, 배가 불룩 나오고 임신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더란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게 되니까, 아기를 안고 다니거나 유모차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더란다. 아이가 조금 자라니까, 뛰어 노는 아이들이 보이더라는 이야기였다. 내가 어떤 입장에 있는지에 따라서 주로 보이는 것들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스키장에 가면서 영동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면 옆에 달리는 차들이 스키장에 가는 차들로 보인다. 길이 막히면 "스키장 가는 차들이 왜 이렇게 많아"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길에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면, 다들 해외여행 가는 사람들로 보이기도 한다. 나의 상황에 따라서 나에게 보이는 것들과 세상을 이해하는 것들이 달라진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수많은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다. 내가 어떤 미디어에 가까이 있느냐에 따라서 세상에서 보이는 것 들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들이 달라지게 된다. 보수적인 언론을 가까이 한다면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게 될 것이고, 진보적인 언론을 가까이 한다면 진보적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진보든 보수든 그 가치가 종교적 가르침과 충돌한다면,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그리스도인이거나, 불교인이거나, 혹은 다른 어떤 종교적 영향을 받은 사람이든 그 종교적 가르침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되고, 그 기준에 따라서 가치 평가를 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성당에도 다니고, 교회에도 다니고, 절에도 다닌다. 그런데, 종종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에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럴 때면, 그리스도인이면서 예수님을 잘 모르나보다. 혹은 예수님을 올바로 보지 못하는 환경에서 살고 있나보다 하고 생각하게 된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일 텐데, 종교적 가르침이 실제로 세상을 보는 내 사고방식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어떤 환경들이 나의 종교적 가르침과 충돌하고 있는지도 동시에 고려해 보았으면 좋겠다.

길을 걷다 보면 자동차를 타고 다닐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때로는 길을 걸으며 내가 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처한 여러 가지 사회적 환경 속에서 예수님 혹은 종교적 가르침과 나의 사고방식이 서로 차이가 난다면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보며 살고 있는지 성찰해보기 바란다.

박제준 천주교 대전교구 한끼 100원 나눔운동본부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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