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등 부정적 이미지서 친근함 급변 대중문화 편승 얄팍한 상업주의 경계 젊은층 공감하며 소통 허리 역할 기대

최근 들어 중년의 아저씨들이 `꽃 중년`으로 격상되어 친근감이 듬뿍 가미된 `아재`로 불리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아저씨들이 젊은이들로부터 개념 없고, 일방적으로 가르치려고만 드는 무대포의 `꼰대` 심지어 인간도 못되는 `개저씨`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일관되어 오다가 따뜻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포장된 `아재`로 거듭난 것이다. 드디어는 언론에서도 특집 기사를 다룰 정도로 `아재`는 뜨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사실상 이 모든 갑작스러운 동시에 당황스러운 상황은 무엇보다도 대중문화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말 모 TV방송국 오락프로그램에서 평소에도 황당하기 그지없던 가수 김흥국이 코미디언 조세호에게 느닷없이 탤런트 안재욱의 결혼식에 왜 안 왔냐고 힐문을 했고, 조세호는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초대받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가냐고 억울해하는 항변을 하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도대체 이 황당무계한 지적질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 입장이 바뀌었다면 멱살이라도 잡았을 수도 있는 `갑질`의 종결 편에 가까운 이 상황을.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시청한 많은 젊은이들은 문자 그대로 뒤집어졌다. 놀랍게도 이 `아그`들이 이 해프닝을 승화(?)시켜 즐기면서 SNS에 쉴 새 없이 퍼 날라, 이제는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아재개그`의 전설이 되어버렸다.

그 해프닝 이후 `아재 개그`는 쌍팔년도-원래는 1955년에 해당하는 단기(檀紀)력의 마지막 두 자리 숫자였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서기(西紀)력 1988년만으로도 충분히 오래된-철 지난 썰렁한 개그에서 갑자기 새로운 웃음코드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김흥국은 이제 `아재`하면 떠오르는 연예인 1위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급기야는 `아재 파탈`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아저씨임에도 섹시하고 멋진 남자들에게 바쳐진 헌사 같은 단어이다. 이것은 아저씨들이 외모에 신경 쓰고 관리하는 세상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단서로 예컨대, 40대 남성의 신용카드 사용액 중 뷰티와 패션에 쓰는 비용이 지난 5년간 무려 81% 이상 증가했으며,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이들이 구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을 제시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지표만 가지고는 충분치 않겠지만, 광고계조차 아저씨로 볼 수 있는 연예인들을 대거 등장시키는 현상은 적어도 아재가 이 시대의 대세로 자리 잡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는 반증일 것이다.

그런데, 묻자. 김흥국이 `아재`인가? 환갑에 가까운 나이의 그가 아재란 말이다. 개그에서는 아재일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그는 아저씨일 뿐이다. 한 때 모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하지 말자"고 외친 적이 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따라하니까 현실하고 개그 상황을 혼동하지 말라고 경고성 멘트를 날린 것이다.

`아재`는 이미지이다. 기분 나쁘더라도 젊은이들의 시선에서 아저씨는 아저씨일 뿐이다. `꼰대`나 `개저씨`가 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럼에도 대중문화를 통해 `아재`가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는 것이, `아재`라는 이미지로 아저씨들의 주머니를 열려는 얄팍한 상업주의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인지 혹은 나이 먹음을 인정하지 않고 젊음을 시대정신으로 삼는 소비사회의 강권 때문인지 나로서는 아직까지 확신할 수 없다.

그렇지만 아저씨들이 우리 사회의 허리로서 작금의 고령세대의 지나친 보수화에 동조하지 않고, 왜 청년세대들이 `헬 조선`을 외치는지 이해하려 애쓰고, 나아가 공감하고 그들 편에 설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아저씨들이 현실상에서 `아재`가 될 수 있는 참된 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기야 최근 들어 만화가 현실이 되고 현실이 만화가 되어 현실과 비현실이 되먹임 관계가 형성되는 초현실적 상황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나오기도 하고, 영화에서 보여준 상황이 현실이 되거나 현실이 영화가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은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김덕호 한국기술교육대 문리HRD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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