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충족·욕구 절제·즐거움 주는 인간상 상반된 의견도 진지하게 받아 들이는 마음 타인을 배려하는 '어른'이 많은 세상 기대

두어 달 전 청주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이불을 털다 실수로 현금 다발을 떨어뜨린 일이 있었다. 대학생 자녀의 등록금을 위해 마련한 이 돈은 대부분 선량한 주민에 의해 회수되었지만 일부는 없어진 것을 보면 "웬 횡재냐"며 돈을 주워간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 "내 돈이 아니다"며 그냥 지나친 사람도 있었을 게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욕심이 일어나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 윤리와 장기적인 이익을 생각하여 욕구를 절제하는 사람, 일시적인 손해로 보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나누어주는 사람이다. 이 세 가지 행동양식은 대부분 사람들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과정이다. 어린이들은 첫 번째 행동양식을 보인다. 맛있는 음식이면 질리도록 먹고 놀이가 재미있으면 잠도 자지 않고 계속 하려고 한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부모 탓을 한다. 건강이나 할 일을 생각하여 절제를 하는 두 번째 행동양식을 보이게 된다면 성인이 된 것이다. 경험과 지혜가 더욱 늘어나 남의 입장을 고려하고 나누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면 어른이라고 부른다. 진정한 `어른`은 절제와 배려가 몸에 익은 사람이다.

음식이 귀한 시절에 자신은 생선의 대가리만 먹으며 살 많은 곳은 자식이나 어르신들께 드리는 부모님을 보면서 어린이들은 "엄마(아빠)는 대가리를 좋아하시는가 보다" 하고 생각한다. 성장한 뒤 부모님이 양보하신 것을 짐작하면서 자신도 그러한 마음을 쓰게 되면 진정한 어른이 된 것이다. 자동차 운전을 할 때도 이 유형대로 나눌 수 있다. 다른 차가 과속으로 무리하게 끼어들 때 첫 번째 유형은 전조등을 번쩍이며 틈을 주지 않는다. 자신도 바빠지면 난폭하게 끼어들기를 감행한다. 교통법규를 잘 지키며 운전하는 두 번째 유형은 무리한 끼어들기를 볼 때 기분이 상하거나 조금 심해도 혼자 욕을 하고 만다. 세 번째 부류라면 "몹시 바쁜 일이 있는가 보다" 하며 양보를 해 준다.

어른은 사회에서 보통 지도자가 된다. 아파트의 주민대표, 회사의 사장, 대학의 총장이나 행정부의 수반 등 각급의 지도자가 있지만 이들이 모두 어른인 것은 아니다. 이 가운데는 권력이나 금력을 바탕으로 수장이 되는 이도 있고 부모의 후광으로 통솔자의 자리에 오르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행동 양식을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 본다면 첫 번째 부류는 법인카드로 개인적인 지출에 사용하고 친인척을 기용하거나 학연, 지연을 따라 인사를 단행한다. 소위 말하는 `갑질`이 잦다. 두 번째 부류는 비리나 부당한 욕심은 없을지라도 단기간의 성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자신의 명예를 높이는데 관심을 갖는다. 세 번째 부류는 가시적인 성과보다는 소외되는 소수에 대한 배려와 대중의 화합,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로운 일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

정책결정을 위해 회의가 필요할 때 이 세 가지 유형은 쉽게 구별이 된다. 첫 번째 유형의 사람이라면 회의를 기피하거나 혹 회의를 열더라도 궤변을 늘어놓으며 규정과 원칙을 무시한 결정을 한다. 두 번째 유형은 자신의 명확한 철학과 원칙이 있어서 한 길로 뚜렷하게 나아가지만, 자신의 입장과 상반되는 의견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세 번째 유형의 사람이라면 회의에 참석한 이들의 견해를 고루 들어본 뒤 결정하고, 그 정책이 시행될 때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점진적으로 시행하거나 때로는 차선책을 선택할 수도 있다. 어린이를 키울 때 잘못을 저지르면 엄하게 다스리고 무조건 옳다고 생각되는 길만 가도록 하는 부모는 두 번째 유형에 가깝다. 하지만 지혜가 많고 너그러운 할아버지나 할머니라면 "오냐, 그렇게 한 번 해 봐라." 하며 여유를 주는 것과 같다.

불교에서는 첫 번째 유형을 범부(凡夫)라 하고 두 번째 유형은 소승(小乘)이라고 부른다. 남을 배려하는 세 번째 사람은 대승의 보살이라고 부른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지도자들이 있다. 부처님오신날과 성년의 날을 앞두고 있는 이즈음에 이들이 보살인지, 진정한 어른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한 가족을 이끄는 가장이면서 직장에서 작은 `장`을 맡고 있는 나는 과연 보살이며 어른인지 돌아보게 된다. 보살이 많은 사회를 불교에서는 불국토라고 하는데 우리 사회는 여기에 얼마나 근접해 있는가.

최기표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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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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