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피해방지 좋지만 경제논리 매몰 생명체의 삶과 죽음 너무나 쉽게 생각 황폐화된 감정 복원 필요성 되새겨야

며칠 전 논산시 연산면에서 돼지 9마리에 대한 구제역 의심 신고가 접수되었다. 구제역 확정 판정이 내려지기 전에 방역 당국에서는 예방적 차원에서 해당 농가에서 사육 중인 돼지 2800여 마리를 도살 처분할 계획인 것으로 보도되었다. 지난달 18일에는 천안시 풍세면에서 돼지 2200여 마리가 매몰되었다. 전날 30여 마리에게 구제역 양성 판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5년 전에 있었던 구제역 파동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이번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가슴이 졸여진다.

2010년 전 겨울부터 다음해 초까지 이어진 구제역 파동에서는 소와 돼지 등 340여만 마리가 도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1월에는 일명 조류독감이라 불리는 조류 인플루엔자가 전북 고창에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7월 30일 기준으로 닭, 오리 등 가금류 1390여만 마리가 도살되었다. 300만의 소와 돼지, 1000만의 닭과 오리들…. 실감 나지 않는 숫자이지만 150만이 조금 넘는 대전시의 인구를 생각할 때 현기증 나도록 많은 것만은 분명하다. 이들의 거의 대부분은 병에 걸려서, 살릴 수가 없어서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고 다른 짐승들에게 옮길까 우려되어 예방적 차원으로 `미리` 죽어야 했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을까?

전염성이 매우 강하고 치사율이 높으며 일단 감염되면 자연치유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전문가들의 설명을 들으면 예방적 차원의 살처분이라는 조치를 무조건 비난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된다. 병이 전염되기 쉬운 초밀집 사육환경, 운동부족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 자연적이지 않은 사료, 감염 후 치료법이나 백신 개발 등에 연구비를 더 투자하지 않은 것 등을 문제 삼기에는 지금 시간이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방역당국이 살처분의 결정을 내릴 때 고려한 조건들이 혹시 `선진국이 하는 방법`이나 `경제적으로 유리`라는 정도가 주된 것이라면 다시 생각할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의 사고방식은 우리와 다르고 경제적 요인 외에도 감안할 점이 있기 때문이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바탕이 된 서양의 주류 사고방식은 동물은 인간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영혼이 없는 동물은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주류 견해이며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동물기계론`을 주장하였다. 비록 근래에 환경주의자나 동물애호가들이 동물의 살 권리를 외치지만 그들은 아직 숫자가 많지 않다. 때문에 주로 경제적 논리로 도살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적어도 불교가 전래된 이래 1600여 년 동안 우리는 윤회설에 기반한 사고와 문화를 지니고 있어서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서양과 달랐다. 축생(동물)은 윤회의 한 고리로서 과거에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나와 다른 사람들의 미래 모습일 수도 있는 존재이다. 우리 부모님들은 "밥 먹고 바로 누우면 다음 생에 소로 태어난다."며 게으름을 경계하셨다. 연예인들을 상대로 하는 토크쇼 같은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다음 생에 현재 부인을 다시 만난다면 결혼하실 겁니까?" 하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이러한 문화가 바탕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소와 한 가족처럼 지내는 할아버지를 사실대로 찍은 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300만 가까운 관객을 기록한 것도 단순한 재미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내가 죽으면 다음에 어떻게 될지-천국이나 지옥에 갈지 혹은 축생이나 다른 모습의 사람으로 태어날지, 그냥 사라지고 말지는 모른다. 내생은 아직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믿음의 영역에 속한다. 하지만 동물도 생각할 수 있고 감정도 있어서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아름다운 전통만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배경을 도외시한 채 경제적 논리만으로, 책상 위에 놓인 숫자가 나열된 보고서만으로 비교적 쉽게 `도살처분`이라는 결정을 내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도살처분의 결정이 내려지면 짐승에게까지 미쳤던 우리의 공감능력도 함께 도살되는 것은 아닌지, 매몰과정에 참여하는 공무원·군인 등의 감정도 함께 매몰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와 돼지·닭과 같은 친근한 동물을 `먹을 것`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황폐한 감정의 소유자들이 늘어가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최기표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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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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