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은 인격을 통해 끝없이 갈고 닦는것 해방된 마음 지나치면 방종·사회 무질서 초월적 양심·객관적 규범 지킬때 참 자유

인격(persona)과 본성(natura)이란 무엇일까? 본성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 그대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본질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 본성은 뛰어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약하고 부족하기 이를데 없는 또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본성은 인격이라는 것을 통해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한다. 즉, 선(bonum)을 끊임없이 추구함으로써 고양되는 것이다. 본성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d`Aquino, 1225-1274년)가 말했듯이 식물적인 본성, 동물적인 본성, 인격적인 본성이 있다. 그래서 자신을 보존하려는 본성이 있고, 자신을 자식을 통해 영원히 지속하려는 본능이 있으며, 무엇을 알려고 하고 또한 사회적 공동체를 이루려는 인격적인 본능이 있다. 하나의 성향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본능이라 할 수 있는 본성은 내 자신이 지니고 있는 일부분이다. 나의 전부가 아니며, 또한 그리 될 수도 없다는 뜻이다. 전부가 되려면 온전히 나의 인격으로 드러내야 한다. 그럴 때의 모습이 인간의 참 모습이다. 일시적인 본능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인격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그래서 옳지 못하다. 예수님께서 왜 `남을 심판하지 마라`(마태 7,1)고 말씀하셨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격으로,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몸(Corpus)으로 표현하자면 그 안에 자유(Libera)와 선택이 함께 있어야 함은 필연적이다. 그 자유로 말미암아 선을 선택하고 그 선을 따라갈 때 진정한 나 자신, 인격이 되기 때문이다. 자유가 없는 선택은 온전한 인격이 될 수 없다. 그 자유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자유에 대해서 말하길 인간이 본능과 전통으로부터의 해방된 그 지평이라 생각한다. 다시말해 누군가로부터, 혹은 어떤 규범으로부터 벗어나 내 임의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자유라 말한다. 본디 자유(Libera)라는 어원은 고대도시국가 안에서 그 공동체에 소속된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말할 때 쓰였던 언어이다. 즉 `나는 ~ 도시의 리베로(libero)이다`라고 표현을 했던 것이다. 이는 어느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닌, 어느 것 안에 철저히 속하는 의미인 것이다. 이렇듯 자유에 대한 오해와 왜곡으로 자칫 자유가 아닌 방종에 빠질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사회의 무질서를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마르탱(Jacques Maritain, 1882-1973년)은 한 아이가 처음으로 하나의 선을 택할 때, 바로 그 행위가 바로 자유 안에서 행하는 선택이라고 말한다. 이 선택은 그 어떤 누구의 압력이나 가르침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경험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선택`이다. 자유 안에서 이루어진 이 근본적인 선택은 바로 우리 안에,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로 내 본성 안에 심어져 있다. 궁극적으로 온전한 자유 안에서의 근본적인 선택이란 결국 내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주체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에는 공통적인 하나의 기준이 있다. 바로 초월적인 양심과, 객관적인 규범이다. 초월적인 양심은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그렇기에 그 양심을 내 안의 자유와 일치시키며 나아갈 수 있다. 또한 규범 역시 내가 살아가는 공동체와 교회 안에서 인간의 본성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기에, 막연히 추상적이거나 지키기 힘든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은 그 본성을 가지고 자유로이 하느님께서 이미 만들어놓은 계획에 동의하며 따라갈 때, 비로소 인격의 완성을 이루고 삶의 충만함에 이르게 된다. 자유란 하느님의 계획에 내 자신이 온전히 응답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다. 여기 하느님의 위대한 사랑의 계획에 온전히 응답한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당신 자신(Corpus)을 온전한 자유로 하느님 아버지께 내어드리며 당신 목숨까지 주시는 사랑으로 우리를 선택하셨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들어 올려 지셨다. 이러한 삶은 결코 신에게만 국한되어 저 멀리 있는 동떨어진 삶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본성을 지닌 한 사람으로서 보여주신 삶이기에 곧 우리에게 활짝 열려 있는 삶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그 충만한 인격을 닮아가며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의 참된 자유의 길이다.

최상순 대전교구 가정사목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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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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