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함만 추구하면 부주의 등 부작용 초래 통증은 자기 존재를 알리는 육체의 수단 쉽게 이룬 성취 '경솔·교만함' 경계해야

설을 맞이하니 1년 내내 옷장 부속품처럼 걸려 있던 한복을 꺼내보게 된다. 나이가 들면 양복보다는 풍덩한 한복을 입은 모습이 보기에 좋지만 아무래도 불편하다. 입을 때 대님과 옷고름 매는 것도 만만치 않고 입고 다닐 때도 바지춤이 커서 허리띠를 단단히 매지 않으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화장실에서 일을 볼 때 잘 여미지 않으면 대책 없이 주욱 흘러내리기도 하고 밥 먹을 때 신경 쓰지 않으면 벌건 김치 국물이며 번들거리는 기름기가 옷소매에 묻기도 한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불편한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

30여 년 전 학생 시절,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다니던 필자에게 선배 한 명이 물었다.

"왜 청바지를 입고 다니지?"

"편하잖아요. 아무데나 앉을 수 있고."

"그래? 나는 아무데나 앉지 않으려고 기지바지 입고 다닌다."

예전에는 양복바지를 기지바지라고 불렀다. `기지`가 일본말일 것이라는 짐작은 있었지만 평소 우리말 쓰자고 주장하는 나로서도 그것이 귀에 거슬릴 상황은 아니었다. 그만큼 이상한 말이었으니까. `스스로 불편함을 선택한다?`

몸에 병이 나거나 상처를 입으면 그곳이 아프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통증을 싫어하겠지만 통증은 치유를 위해 꼭 필요한 장치이다. `새끼손가락 걸며 약속`하는 청춘시절이 아니라면 소지(小指)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존재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끝에 가시가 박혀 염증이 생긴다면 존재감이 뚜렷해진다. 세수할 때나 밥 먹을 때, 걸어 다닐 때에도 녀석은 "나 여기 있어요." 하고 계속 소리를 질러댄다. 통증은 자기의 존재를 알리는 육체의 수단인 것이다. 덕분에 손가락에 정신이 집중되고, 정신이 집중되니 한층 조심하게 되어 속히 낫게 된다. 통증이 없다면 더러운 물건이고 물이고 마구 만져서 염증이 영영 낫기 어렵지 않았겠는가. 복통이나 두통도 마찬가지이다.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알리기 위하여, 육체가 생존하기 위한 자구적 조치로서 통증이라는 `싫어하는` 신호를 보내어 집중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불편함을 싫어하고 그 반대편의 가치인 편안함, 안락함을 좋아한다. 불편을 개량하기 위해 수많은 발명이 이루어졌고 광고 속에는 편리함을 자랑하는 문구가 넘쳐난다. 하지만 편리함만을 추구하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지금은 누구나 안다. 전자계산기가 나온 이후 암산능력이 떨어졌고 전화기의 번호저장 기능 덕분에 가족 전화번호도 모른다. 대중교통이나 승강기의 편리함을 좋아하다 보니 다리는 약해진다. 자동차의 각종 자동장치들은 운전 중에 부주의를 유발하고 간편한 결제를 도와주는 신용카드나 스마트폰 앱은 과소비를 유발할 수 있다. 이들보다 중요한 문제는 너무 편리하면 `신경 쓸 일`이 없게 되고 신경을 쓰지 않으면 부주의나 무의식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무의식`이란 실제로 의식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평소 습관대로, 자신을 살피지 않은 채 말하거나 행동한다는 뜻이다.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거나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달달 떨고 있다"는 등의 행위가 이런 예이다. 이런 행동이 지속되면 자신을 고치거나 발전시킬 수 없다. 술에 취한 김유신을 태우고 평소 습관처럼 기생집으로 향한 말은 억울하게 목이 베이기도 하였다. 불편함은 몸에 이상이 있을 때 집중하게 만들도록 하는 통증이라는 신호와 유사하다. 스스로 불편을 선택하면 행동에 신경을 쓰게 되고 무의식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 자신의 행동을 살피면서 습관적으로 행동하지 않기 위해서 약간의 불편함을 선택하는 것은 미꾸라지가 오래 살도록 어항에 메기를 넣는 것처럼 지혜로운 일이다. 불편한 `기지바지`를 입고 다니던 선배는 현명했던 것이다.

옛 중국의 고승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일을 도모할 때 쉽게 성취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성취되면 마음에 경솔함과 교만함이 남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어려움이 남은 것을 성취로 여기라.`고 하셨느니라."

최기표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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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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