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안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아는것 희노애락 함께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마음 간직하길

현대인들에게 `사랑`이란 말은 풍요롭고 따뜻한 느낌보다는 메마르고 차가운 느낌의 단어가 돼 버렸다. 여기에 `영원한`이라는 형용사를 추가하면 더욱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영원한 사랑`은 종교적인 언어에 한정되어있는 이상적인 것이라 생각하며, 이 세상에서는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고 단정해 버린다. 정말 `영원한 사랑`은 없을까? 혹시 우리가 `영원한 사랑`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원한 사랑`은 `있다 혹은 없다`라고 논하는 자체가 모순이다.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영원한 사랑은 누가, 어떤 모습으로, 언제 완성되는 것인가?` 라고….

`사랑은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하면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과 감정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랑을 압니까?` 라고 질문하면 대답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작아진다. 혼인생활 10여년이 된 부부에게 배우자를 아십니까? 라고 질문하면 자신 있게 `잘 안다`고 대답한다. 혼인생활 30년 정도 된 부부들은 잠시 머뭇거리며 `글쎄요…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혼인생활 50년이 넘은 그분들은 아주 겸손되이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라고 대답한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의 집에 들어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 말하자,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루카1,34)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알다(이태리어conoscere)`라는 히브리어 `Yada`(야다)가 등장한다. 히브리어로 `~을 안다` 라는 뜻은 크게 2가지의 의미를 지니는데, 첫 번째 의미로 `Yada`는 성교(性交)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마리아의 대답은 남자와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제 구약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창세기 4장 1절에는 `하와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주님의 도우심으로 남자 아이를 얻었다`가 나온다. 여기서 `잠자리를 같이하다.` 라는 원어는 conoscere 즉, `알다.` 라는 뜻이다. 서로를 알아 자녀를 얻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제 `Yada`의 두 번째 뜻을 알 수 있다. `~을 알다`라는 동사는 `하느님을 안다`라고 할 때 쓰이는 단어다. 여기서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피상적인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향해 아낌없이 내어주면서 친밀한 인격적 친교를 이루며 자녀를 낳는 것처럼,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랑으로 보내주신 아드님,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인격적 친교의 체험을 통해 참으로 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배우자를 압니다.`라는 표현은 결국 몸의 언어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고 체험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즉, 너를 안다는 것은 곧 내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이요, 이를 통해 곧 하느님의 사랑을 안다는 뜻이다.

시간은 하느님으로부터 발(發)하여 하느님께로 이르는(着) 동그란 원(球)과 같다.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허무한 일직선이 아닌,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원(球)인 것이다. 따라서 시간은 영원성을 지닌다.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은 없다. 단지, 지금! 여기에! 우리의 기억 속에 과거가, 우리의 희망 속에 미래가 있을 뿐이다. 과거와 미래는 바로 오늘이라는 시간 안에서 현재화되는 것이다.

어느 노(老)부부가 혼인 50주년을 맞이하는 날, `서로 만나 혼인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구려. 그 동안 함께 해주어 고맙소` 라고 눈물의 고백을 할 때, 50년이라는 수 많은 세월은 어제와 같다는 표현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현재화되며 그 처음의 순간으로 돌아감과 동시에 눈물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닌 기쁨으로 바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시간을 초월하는 사랑의 영원성이다. 영원한 사랑! 누가 행하는 것일까? 너로 인한, 그리고 너를 통한 나다. 어떤 모습일까? 선물로서 오직 너를 향해 내어주는 남편·아버지이며, 아내·어머니이다. 언제 완성될까?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희망을 담고 있는 바로 오늘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나를 되가져 가신다 하더라도 사랑만은 남겨주소서. 아니 모든 것을 가져가시어 내 안에 사랑만이 남게 하소서.` 수도자로서의 첫발을 내딛는 어느 앳된 수녀의 이 봉헌기도가 자꾸만 내 가슴에서 울리는 오늘이다.

최상순 대전교구 가정사목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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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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