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헌 대전발전연구원 연구위원.
한상헌 대전발전연구원 연구위원.
올 여름 우연히 대전시립미술관에서 한국근현대미술특별전을 보게 되었다. 주옥같은 전시품 중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장욱진 화가의 작품들이었는데, 특기할 만한 것은 그의 이력이 충남 연기군 출신이었다는 점이었다. 우리 지역의 화가였었나? 궁금증이 생겨 자료를 찾아보니 분명 충남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이미 다른 지역에서 장욱진 화가의 삶과 활동을 선취하고 기리면서 그 지역의 작가로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이것이 바로 문화 정책의 힘이구나 하는 탄식 속에서 마침 내게 연구 과제로 부여된 출향 문화예술인 현황을 좀 더 적극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온라인상의 프로필은 연예계 쪽에 치우쳐 있어 결국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지역의 원로예술인들을 찾아가 기억에 의지하면서 정보를 얻자 넝쿨줄기 나오듯 하나둘씩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조사 과정은 흔히 대전과 충남, 충북은 문화 불모지라는 일반적 인식이 엄청난 편견이라는 것을 깨닫는 경험이었다. 현재 왕성하게 활동 중인 문화예술인들로 한정했기 때문에 300명이 약간 넘는 정도였지만 면면을 보면 지역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문학 분야만 하더라도 향토색을 작품세계에 훌륭하게 녹여 우리 지역의 멋을 알리고 있는 박범신, 윤대녕, 나희덕 등이 떠오르고, 임우기, 정과리 등 평단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평론가들이 있는가 하면,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세계적 인지도를 얻고 있는 황선미도 충남 홍성 출신이다.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플루티스트 최나경 등이 전 세계적 아티스트로 비상을 꿈꾸고 있으며, 우리나라 국악계의 대부라 할 수 있는 김영동과 김덕수, 소리꾼 장사익도 대전과 충남 출신이다. 대중문화 쪽으로 눈길을 돌려 보면 더 풍성하다. 대중가수 신승훈이나 코미디언 김준호, 배우 권상우 등 지역 출신임이 널리 알려진 인물들뿐만 아니라 연극배우 남명렬, 배우 송중기, 온주완, 한은정, 영화감독 이재용, `순풍산부인과`, `거침없이 하이킥`의 작가 송재정 등 대전만으로 범위를 좁혀 봐도 즐비하다.

하지만 정해진 연구기간이 촉박해 마치 산삼꽃을 눈앞에 두고도 캐지 못하듯이 아쉬움을 달래야 했고 따라서 조사결과를 내놓고 나니 숭숭 빠뜨린 분들이 많은 것 같아 마음에 차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지역출신의 문화예술인을 좀 더 확충하여 데이터베이스화하는 후속 연구도 필요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도 더해야 한다.

원로배우 이순재는 평안도 출생임에도 대전에서 유년기를 보낸 탓에 대전에 대한 애틋함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작 이러한 사실을 우리지역에서는 모르고 있다. 사진작가 육명심, 원로화가 이종상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가 예술인에 대해서는 특별한 기획전이 마련되어야 한다. 출향예술인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것은 배타적인 지역감정의 발로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러한 인물들이 알려질수록 지역의 신진 문화예술인들도 보다 친근한 롤모델을 설정하고 예술활동의 자극제로 삼을 계기가 될 수 있다.

월북 작가인 정지용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옥천군이나 세계적 음악인 윤이상의 출신지임을 부각해 통영의 문화적 품격을 높인 것처럼 우리지역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문화적 거인들을 찾아낼 수 있다. 우리나라 출신으로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을 보며 온 국민이 뿌듯함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 지역 출신으로 각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고 활발히 활동하는 문화예술인을 찾고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지역에서 내내 활동하고 있는 소중한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책들이 외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양자는 서로 보완책으로서 추진되어야 한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는 고은 시인은 `나의 작품들을 있게 한 것은 내 고향`이었다고 술회한다. 그동안 이상하리만치 고은 시인에 대해 무심했던 전북 군산시는 올해부터 생가복원을 비롯해 대대적으로 지역 대표 문인에 걸맞는 선양사업들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대전시도 못할 이유가 없으며, 충분한 자격의 문화예술인도 많다. 출향문화예술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것, 지역 예술인에 대한 지원과 함께 대전의 문화적 품격을 높이는 방책으로 숙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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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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