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직지문화공원
직지문화공원
찌는 듯 한 더위가 엄습했다. 땅 위로 오르는 열기에 발바닥이 후끈 거리고 아스팔트 위를 걸을 때마다 뜨거운 지열이 느껴지면 등줄기가 젖어 든다. 선풍기나 에어컨 따위 인위적인 바람은 불편하다. 여름은 그렇게 이미 성큼 다가왔고 우리에게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올 한해를 시작하면서 상승곡선을 그리던 생체리듬도 하향세로 접어든 지 오래다. 몸과 마음을 힐링하며 나머지 반년을 준비할 때가 됐다는 것을 날씨, 몸, 마음 모두 알려온다.

무심결에 지도를 봤다. 멀 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으로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다. 충동적으로 김천을 꼽았다. 일단 출발, 대전에서 1시간 여를 달려 김천시내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큰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잠시 도시 구석구석 묻어나는 정(情)이 느껴지자 마음이 편안하다. 요란하지도 너무 조용하지도 않은 김천 시내는 거닐기 제격이다. `도시인 듯, 도시 아닌, 도시 같은` 절로 유명 노래가사가 머리 속에 맴돈다. 더위를 잊을 만큼 풋풋함이 느껴지는 도시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누군가의 삶은 치열할 것이다. 반면 김천 시내를 거니는 동안 마음은 편안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김천옛날솜씨마을로 발길을 옮겼다. 전국적으로도 유행하는 벽화마을이다. 때문에 식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곳의 벽화마을은 페인트 색이 옅어진 것이 인고의 시간을 보낸 듯 자연스럽다. 마치 시골의 오래된 할머니댁을 들른 듯 정겹다. 유명한 만둣집, 60년 전통의 중국집 등 김천을 두루 감싸고 있는 약간의 중국향은 김천 시내 여행의 맛에 풍미를 더한다.

시내를 뒤로하고 직지사로 향했다. 절이다.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선덕여왕 15년에 자장율사가 중수하고 경순왕 4년 친묵대사가 추가로 절을 지어 지금의 위용스런 갖췄다. 고려시대에는 이 절이 당시 제일의 사찰로 각광받았다. 실제로 부처 반열에 올랐다 평가받는 사명대사도 이 절에서부터 불교의 길을 걸었다고 전해진다. 고찰은 언제나 치유의의 공간이 된다. 수 많은 불자들이 또 수많은 부처들이 이 곳을 오고간 온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여름의 더위는 불어오는 바람에 날려 보낸 지 오래다. 불어드는 바람은 짙게 물든 청록의 잎사귀를 스쳐간다. 바람 사이로 나뭇잎 소리가 난다.

`동국제일가람황학산문`이라는 현판을 지나 대웅전 앞에 다다르자 그 위용에 고개가 숙여진다. 대웅전과 마주하고 있는 도천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손을 카메라 셔터로 향하게 할 만큼 안정감과 멋 드러진 구도를 선사한다. 본디 이 탑은 날카로움 처마를 자랑했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이 탑을 무뎌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석탑 옆을 지나며 흘겨 들은 한 문화해설사의 석탑에 대한 기구한 운명 이야기는 측은함을 들게 했다.

그는 "이 석탑들은 본래 문경시 도천사 자리에 파손돼 있었다"며 "지난 1974년 직지사 주지였던 녹원스님이 원형을 복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직지사에서 시원한 자연풍을 맞으며 마음을 힐링 했다면 직지사를 내려와 직지문화공원과 세계도자기박물관에서 몸을 쉬게하는 것이 좋다. 직지문화공원은 넓게 트인 광장이 인상적이다. `대전에도 이런 공간이 있었다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질투어린 시선과 부러운 마음이 교차한다.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에서부터 설렁설렁 무심한 듯 자리를 피고 누운 어르신까지 하나 같이 얼굴에 평안함이 묻어난다. 물까지 한 데 어울어져 쉼을 취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직지문화공원은 지난 2001년 12월 직지사 입구에서부터 공사를 시작해 2004년 4월 21일까지 2만1400평에 달하는 거대한 문화공원으로 조성됐다. 중앙의 음악분수를 중심으로 내려다보면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보인다. 이 장승들은 그 키가 아파트 7층 높이에 달할 만큼 큼지막해 시원시원함이 느껴진다. 음악분수를 중심으로 위로 바라보면 세계도자기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또 직지문화공원에 놓인 각종 조각상들은 심미적인 호기심을 자극한다.

김천시 관계자는 "직지문화공원은 김천시의 자랑"이라며 "예술인들의 각종 작품들은 김천시민들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효과를 발휘 한다"고 설명했다.

직지문화공원의 지압 길을 지나 세계도자기박물관으로 향했다. 지난 2006년 개관한 이 박물관은 외관부터 도자기의 수려한 곡선을 뽐낸다. 정문을 바라보고 왼쪽에 위치한 거대한 도자기 조형물은 이 박물관의 자랑이다. 박물관은 일본에서 귀화한 복전영자(福田英子)로부터 기증받은 각종 자기와 크리스탈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개인의 소장품이라고 하기에는 그 양이 방대하고 세계 각지의 수려한 도자기들을 한 데 모아놨다. 그도 그럴 것이 복전영자씨가 기증한 자기와 크리스탈이 1018점에 이르기 때문이다. 김천시 관계자는 "세계도자기박물관도 김천시의 자랑 중 하나"라며 "김천에 다양한 즐길거리 중 직지사와 직지문화공원, 김천세계도자기박물관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가장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김천을 뒤로하고 다시 대전으로 향하며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근교에서 숨은 보석을 찾은 듯 했다. 무더운 여름을 피해 쉬 떠나 쉬 올 수 있는 그런 곳을 찾는다면 주저 없이 김천을 추천한다. 김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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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 대웅전
직지사 대웅전
직지사 내 도천사지 동서 삼층석탑
직지사 내 도천사지 동서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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