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 동화작가
김미희 동화작가
아름다운 신부가 있었다. 결혼식을 앞두고 신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신랑 손을 잡고 신혼집에 들여놓을 책장을 보러 다니는 일이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할 책장을 만날 생각에 들떴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중에 그 책장에 꽂힐 책을 고르며 결혼 준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신랑은 세상에서 정말 배고픈 직업은 시인이라며 의무적으로 시집을 사는 독자였다. 주말이면 책 읽기 좋은 찻집에서 책 속 인생을 만나는 일을 삶의 기쁨으로 여겼다. 부부는 스마트폰이라는 신문물 앞에서도 꿋꿋했다. 시간을 갉아먹는 휴대폰이 쳐들어와도 끄덕 않을 철옹성을 쌓아둔 터였다. 와이파이 존을 벗어나면 똑똑한 짓을 도맡아하는 휴대폰도 전화를 걸고 받는 원초적인 역할로 밀려났다. 무제한 요금제에 도둑 맞을 자산을 카페에서 독서를 하는 값으로 치렀다.

그러나 그들의 아이는 달랐다. 손바닥만 한 기기에 몸과 마음을 다해 충성하느라 종이 냄새를 맡지 못했다. 활극처럼 몇 초 만에 휘리릭 날아다니는 문자들에서 여과되지 않은 불량정보를 고급정보인 양 여기며 한 몸으로 지냈다. 부부가 무릎독서를 주창하며 공들여 쌓은 탑이 맥없이 무너져갔다. 사춘기라는 거대한 태풍이 몰아쳐 한몫 보탰다. 탄식이 흘러나오는 날이 많았다.

새삼 스마트 기기가 아이들의 독서시간을 빼앗는다. 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미래가 두렵다는 말을 하려는 거다. 스마트폰 중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생각이 멈춘 아이들이 늘어간다는 뜻이다. 추리, 논리, 감성을 가진 아이들이 사라져간다. 아이만 그런가. 어른들도 얼굴을 맞대고 눈빛을 나누고 가슴으로 읽으려 하기 보다 SNS 속 이웃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가슴 뜨거워지지 않는 소통을 한다.

애국자도 아닌데 조국의 앞날이 걱정된다. 책이 가져다 줄 미래를 스마트폰이 대신해주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 조차 자신의 자녀는 아이패드를 한 적도 없고 휴대전화도 없다고 했다. 날마다 저녁 식사 시간에 책과 역사에 대해 토론을 했다고 한다. 바로 아름다운 신부가 꿈꾸던 가정의 모습이다.

사람은 상품을 구매할 소비자로만 정의되어지는 세상에 사는 것이 문제일까? 휴대폰을 바꾸라는 전화는 왜 그렇게 자주 오는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놓쳐도 상심 마시라고, 언제든 볼 수 있고 가격도 요리조리 묶으면 한 달에 커피 한 잔 값이면 충분합니다. 가계부까지 확인한 듯 직원들은 리모컨으로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 집에 텔레비전 없거든요." 예닐곱 차례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통신사에서 걸려오는 그런 전화 아니어도 무료로 다시보기 할 수 있는 어둠의 경로는 많았다. 차라리 그럴 거면 통신사에 돈을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한 신부는 통신사 직원의 설득을 받아들였다. 신부는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통신사가 만든 양어장에 풀어놓은 드라마라는 물고기를 낚으며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스마트미디어 사용습관은 부모 하기 나름이라고 말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부모의 영향력을 최소화시키고 있다. 스마트폰의 유혹은 달콤하여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SNS 속에서 수많은 이웃을 만나면서도 외로워하고 소통한답시고 시간을 보냄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갈구한다.

스마트폰 대신, 무한 드라마 시청 대신 책을 읽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아름다운 신부였던 엄마의 화두가 되었다. 독서를 불허하는 세상 탓만 하며 살기엔 신부의 꿈이 너무 애달프다. 책장을 고르며 그리던 가정의 모습이 빛 바래는 걸 원치 않는다.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SNS를 절제하는 용기, 드라마를 포기하는 결단. 통신사 약정의 덫에 걸리지 않을 지혜. 사춘기에 맞설 공공의 병기를 찾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행동으로 옮기는 결단이 그날로 데려다 주리라. 책장에 책을 정리하다 손에 들린 책을 읽느라 날이 새는 줄도 몰랐던 아름다운 신부의 그날로. 아이들에게도 대물림 되기를 바라는 그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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