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미국 이름 캐슬린 스티븐스를 제치고 자신이 작명한 한국명 심은경을 더 사랑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전임 주한 미 대사의 한국 사랑을 우리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자전거로 시골길을 누비면서 유창한 한국말로 촌로들과 어울리기를 즐겨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인간애와 함께 넉넉한 심성을 부러워하였다.

이번에는 마크 리퍼트(Mark Lippert) 주한 미국 대사가 스스로 한국 이름을 지어준 아들 세준이의 100일 잔치를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것도 전통 한식으로 말이다. 색동옷을 입히고 상차림도 백설기와 오색송편 명주실도 준비했다고 한다. 리퍼트 대사는 한국 괴한에 의해 칼침을 맞고도 의연하게 웃으며 "함께 갑시다"라는 말로 우리 국민들을 위로해 주기도 했다. 솔직하고도 넘치는 한국 사랑을 마음껏 담백하게 보여주었다고 여겨진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또 한 사람의 미국인 제프리 존스에 대한 얘기를 이 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주한 미(美) 상공회의소(AMCHAM)의 회장으로 재직한 적이 있는 미국 변호사다. 필자는 어떤 조찬모임에서 그의 강연을 들었고 텔레비전에서는 그의 인터뷰 장면을 보았다. 그는 한국 여인과 결혼하여 중학생인 두 아이를 가진 미국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1시간에 걸친 강연 중에 한국을 가리켜 한국이라는 말 대신에 언제나 똑같이 `우리나라`라고 표현하였다. 조찬강연후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한국인들도 군대 안 가려고 국적을 포기하는 판에 당신은 왜 외국인이면서도 자녀들의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한다.

"내 아이들은 2중 국적자들인데 국적 문제는 내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고 그들이 크면 저희들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 아니겠어요? 그리고 또 사내아이들이 커서 군에 가게 되면 가는 것이지 뭐가 그렇게 두려울 것이 있겠어요?" 그의 말은 간단하면서도 명쾌하였다.

제프리 존스와 스티븐스(심은경)와 리퍼트 대사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하나다. 이들의 순정 어린 인성과 심성은 어떻게 해서 형성된 것일까 하는 점이다. 이들 미국인의 아름다운 인성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워야 할까 싶어 부끄러움이 앞섰다. 대사들이기 때문에 취하는 제스처는 절대로 아니다. 본심에서 우러나온 자연스러운 성정 그 자체다. 어쩌면 미국인들이 성장하면서 몸으로 익힌 덕성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6·25 당시에 반공포로에 대해서 취한 조치를 보아도 한결같다. 제네바 협정에 따르면 모든 포로들은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지체 없이 석방되고 본국으로 송환되어야 했다. 그러나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북한 군인으로 포로가 되었지만 다시는 북한 공산체제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는 반공포로들을 제네바 협정에만 매달려 죽음의 동토지역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은 비인도적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비인도적 조치를 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엄청난 인명손실을 무릅쓰고 포로들의 자유송환제를 고수하기에 이른 것이다. 미국이 단순하게 자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 종식에만 집착하였다면 포로 교환 문제로 1년 5개월씩이나 협상을 질질 끌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트루먼 대통령 또한 질질 끄는 휴전 협상으로 인해 자신에 대한 국내 지지도가 20%대로 떨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을 학살하거나 노예가 되도록 넘겨주는 대가로 휴전을 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라는 말로 반공포로 북송을 저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다.

또 당시 미 8군 사령관인 밴 플리트 장군의 아들이 자진해서 한국전에 참여하였다가 실종이 되었다. 그러자 공군의 수색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수색작업이 완전히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 밴 장군은 명령했다. "이제 구출작전을 중단하라. 그만하면 할 만큼 했다고 본다."

미국인들이 보여주는 이런 일연의 심성을 우리는 왜 가지지 못했는가, 자못 부러울 뿐이다.

전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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