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배 논설위원
나병배 논설위원
어떤 사안을 단시간내 정치쟁점화시키려면 조건이 있다. 우선 처음 말을 꺼낸 사람의 정치적 비중이다. 얼른 당 대표, 원내대표 등이 꼽힌다. 이들이 정치적으로 예민한 발언을 하면 여론시장이 즉각 반응하게 된다. 정당 행사장에서의 퍼포먼스였다고 해명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국회의원 정수 증원 발언이 그런 예이다.

문 대표가 거론한 의원 정수 문제는 본질적으로 선거제도와 맞닿아있다. 의원 숫자를 늘리게 되면 지역 선거구나 비례대표를 늘리거나 아니면 적절한 배분 과정을 거쳐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정치개혁특위에서 헌재결정에 따라 선거구재획정 문제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 상황이다. 이것 만해도 버거운 마당에 의원 정원을 늘리게 되면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의원 숫자 문제로 다소 시끄럽긴 해도 현행 선거제도는 아직 쓸 만하다고 본다. 부분적으로 보완이 필요하다면 기술적으로 다듬고 손질하면 된다. 그런 길을 외면하고 거창하게 선거제도 전반을 개혁해야 할 것처럼 나오는 건 일방의 논리이며 또 그게 옳은 길이라는 보장도 없다.

큰 것에 집착하면 작은 것을 놓치기 십상이다. 작은 부분이 본질적인 문제라면 거기에서 답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거제도 개혁 역시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문 대표 발언이 있었지만 의원 정수 증원 문제도 당위론만 내세워 접근해선 곤란하다. 적어도 현재의 300명 가지곤 도저히 안된다는 합리적인 증명이 있어야 한다.

문 대표는 의원 숫자를 건드리기 보다 현 선거제도의 디테일에 눈을 돌렸어야 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고 하지만 역으로 문제의 해법이 디테일에 내재해 있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국회의원 재·보선을 지금 방식으로 존치시킬 이유가 있는지 차제에 한 번 따져 봐야 한다. 재·보선은 해당 선거구 현역 의원이 의원직을 잃었거나 의원직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치르는 선거다. 법정 정원에 결원이 생겼을 때 충원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꼭 그래야 하는지 의문이다. 지역 선거구 의원직 궐위 사태는 일차적으로 선출된 의원 개인에게 유책사유가 있다. 상식적 판단으로는 새 사람을 뽑아야 맞지만 궐위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정당의 공천 실패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지역 주민들한테는 선택의 실패에 대한 책임성을 각성시키는 현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만약 재·보선이 없어지면 의원 임기중에 타 선거로 갈아탈 생각도 못하게 된다. 2년간 배지 달고 있다가 지방선거에 나가는 결정을 지역 유권자들이 달가워할 리 없다.

재·보선 폐지가 불가하다면 선거 횟수를 대폭 줄이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현행 선거법엔 매년 상·하반기에 재·보선 사유가 있으면 선거를 치르도록 돼 있다. 이를 2년 걸러 치르는 식으로 고치면 선거를 몰아서 치를 수 있다. 새로 뽑힌 사람에겐 임기 손실이 따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보정 장치로 의원 임기 4년을 그대로 보장해 주면 해소된다. 이렇게 되면 재·보선으로 진입한 숫자가 점차 불어 날 것이고 2년 단위의 의원들 물갈이도 가능해진다. 의원들 순환 주기가 빨라지는 효과가 있다.

최소 인구 기준에 미달해 선거구 합구가 예상되는 시·군지역 선거구 문제도 대안을 찾기 나름이다. 예외규정을 두면 좋지만 그게 어렵다면 변형된 비례대표제를 통해 해결하는 방법도 있다. 정당별로 이런 곳을 책임질 지역 연고자를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해 당선되면 자연히 지역구 관리형 의원으로 봉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얘기가 나오는 만큼 기술적으로 합의되면 선거구 재획정에 따른 갈등비용을 줄일 수 있을 듯하다.

정치개혁 문제, 특히 선거제도와 관련해 판을 다시 짜는 일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하나를 건드리면 다른 여러 회로가 얽히고 설키게 돼 결론을 내기가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현행 방식을 부분 부분 다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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