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화단의 목련이 하얗게 꽃을 피우고 도로변 개나리도 노란 꽃망울을 내밀고 있어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정국은 봄 같지 않다. 사정(司正)의 칼 바람으로 꽁꽁 얼어붙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지난 12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부정부패 척결`을 선포하면서 집권 3년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의 고강도 사정은 막이 올랐다. 이 총리의 담화문 발표 바로 다음날 검찰은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포스코 건설을 전격 압수수색에 나서며 사정의 칼을 꺼내 들었다.

사정한파로 요즘 공직자와 기업인들에게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시 구절이 더욱 가슴에 와 닿을 듯하다. 춘래불사춘은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로 시작되는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소군원`(昭君怨·왕소군의 한)에서 나왔다. 왕소군은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히는데, 기러기가 쳐다보다가 넋을 잃고 날갯짓을 잊어 떨어졌다는 `낙안(落雁)의 미인`으로 알려져 있다. 한나라 원제(元帝)의 후궁으로 궁에 들어갔으나 화공이 그녀의 초상화를 후궁 중에서 가장 밉게 그려 흉노의 대군주 선우와 강제 정략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원제는 왕소군이 빼어난 미인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 그녀의 초상화를 그린 화공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초상화 심사를 통해 가장 못생긴 후궁을 오랑캐와 화친을 위해 정략결혼시키려는 것을 안 화공이 실물보다는 돈의 액수를 기준으로 초상화를 그렸기 때문이다. 이는 뇌물수수와 직무유기 등 부패한 관리에 대한 사정(司正)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 3년차를 맞아 고강도 사정에 나선 것에 대해 정치권은 내년 4월 총선거를 앞두고 약해진 국정장악력을 다잡기 위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초 국정지지율이 60%를 넘었으나 세월호 침몰과 정윤회 문건파동, 담뱃값 인상, 공무원 연금 개혁 등으로 지난 1월에는 30%대까지 추락하는 등 조기 레임덕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디플레이션 우려 속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1.75%까지 내리는 등 경제사정도 좋지 않다. 따라서 이번 사정을 국면 전환용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친박계의 결집을 통해 내년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 안정적 국정 운영을 펼치겠다는 것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또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상처 투성이`가 된 이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등 이미지 쇄신용이라는 분석도 있다.

역대 정부도 집권 3년차에 국정을 추스르기 위해 `부정부패와의 전쟁`에 나섰다. 참여정부는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 MB정부는 `공정한 사회`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이번 사정에서 검찰의 칼끝이 MB정부시절의 자원외교, 비자금 조성 등 부패 사슬과 정권 실세와의 연관성을 겨냥하면서 현 정권과 전 정권의 갈등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전·현 정권의 갈등은 이전에도 늘 있었고, 언제나 살아 있는 권력의 승리로 끝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사 바로세우기` 작업을 통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웠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북송금 특검을 통해 DJ 측근인 박지원 의원을 구속시켰다. 이명박 대통령도 `박연차 게이트`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을 수사했다.

경제살리기 측면에서 사정은 `양날의 칼`이라고 할 수 있다. 부정부패 척결에 대대적으로 나서면 공직사회는 복지부동, 재계는 투자기피 등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정부가 지난 20일 장관급 회의에서 10조 원대의 경기 부양책을, 차관급 및 1급 회의에서는 정부 합동의 부정부패 척결 방안을 내놨다. 정부가 같은 날 상충되는 메시지를 발표하자 재계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사정 수사는 잘 하면 약이고 잘못하면 독`이라는 말이 있다.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는 사정이 되기 위해서는 사정의 칼날이 바람에 휘둘려 춤추지 않고 오로지 부패와 비리의 심장을 겨누어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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