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움은 그냥 지나가지 않아 충분히 고통의 대가 치러야 모든 순간 성실히 보내야만 행복한 인생의 나침반 찾아 "

살아가는 세월이 쌓일수록 지혜가 늘어나고 자비심이 커져야 하는데, 오히려 잔소리만 많아지고 고집만 세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과 두려움에 잠들지 못할 때가 있다.

특히 산사에 사는 수행자로서 불보살님 전에 "밥값을 제대로 하는가?" 자문하면 그렇게 떳떳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름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부족함이 느껴질 뿐이다.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지 않고 담담한 나날을 살아가려고 하지만 아직도 지나간 세월은 너무나 빠르고 살아가는 오늘과 다가오는 내일은 너무 느려서 답답하고 지루하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후회하고 한탄하기보다 오늘의 순간순간을 성실하게 살아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생각해보면 만족스럽지 않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마음이 넓어지고 욕심이 없어진다고 하였다. 세월을 쌓아갈수록 저절로 수행이 되어간다는 뜻으로 알고 있다. 살아가는 세월만큼 저절로 수행이 된다면 정말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20여 년 전 스리랑카에서 지낼 때 그쪽 사람들로부터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욕심이 더 많아진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 '나이 든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곤 했다. 살아온 경험만큼 분명 더 현명해지고 너그러운 면이 있다. 그러나 반면 더 고집스럽고 욕심이 많아지는 면도 있음이 분명하다. 결론은 세월이 많이 흐른다고 해서 사람은 저절로 마음이 넓어지고 욕심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스스로 얼마나 수행과 수양을 닦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품이 드러나는 것이다.

세월을 통해 자신을 갈고 닦은 사람은 빛이 나고 아름답지만 탐욕과 방탕함에 몸을 맡겨버린 사람은 세월만큼 추하고 안타까운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려움이나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얼른 그 시간이 지나가 버리기를 간절히 바라곤 한다. 그러나 시간은 결코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한다. 충분히 힘들고 고통스러워해야 그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다. 잘못된 일에 대해서 지나간 일은 마음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다가올 일은 마음이 편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습성이다. 지나간 고통에 둔감하고 다가올 고통에 예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지나간 과거의 잘못과 아픔을 더욱 깊이 끌어안고 살아간다. 새로운 잘못을 범해서 아픔과 슬픔 그리고 번뇌에 다시 빠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같은 돌에 두 번, 세 번 걸려서 넘어지면 바보라고 놀림을 받곤 한다. 그런데 인생에 있어서 유사한 잘못을 수십 번씩 하는 사람을 자주 보곤 한다. 돌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보다 훨씬 심한 바보이다. 그러나 누구도 대놓고 그런 사람을 바보라고 손가락질하며 웃지 않는다. 내심 자신들도 다 비슷한 부류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왕삼매론은 인생을 살아감에 크게 도움이 되는 열 가지 가르침을 설하고 있다. 그 중 일곱 번째에 이르기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지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써 원림(園林)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동산의 수풀처럼 주변에 가득하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고민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어야 교만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세상살이를 잘 살펴보면 남들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는 경우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이 세상은 누가 교만해질 만큼 남을 인정해 주거나 따라 주는 세상이 아닌 것 같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주변에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가득함을 간파하시고 그런 상황을 '수행에 도움이 되도록 하라'고 타이르시는 것이다.

살아온 세월이 그리고 살아갈 시간이 답은 아니다. 사람의 가치와 아름다움은 그 사람의 노력과 성실함이 빚어내는 것이지 오래 살고 많이 경험했다고 귀한 것은 아니다. 주경 서산 부석사 주지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